행정당국의 여당선거운동 지원과 예산의 선거비 전용사례는 그동안 누구에게나 알려진 공지의 비밀이었다. 하지만 국회에서 총리가 87년 특별기금 5백52억원의 선거선심사업 전용등을 공식적으로는 처음 시인,사과한 사실은 우리에게 대단한 충격을 준다. 비록 5공화국때의 일이라지만 그 돈이 6공화국 출범을 위한 선거에 쓰인 것임을 생각할 때 결과적으로 정권의 도덕성에 얼룩을 남기게 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울러 행정부와 공무원의 공공연한 선거간여와 국가예산 살포및 민주적인 예산운용원칙의 파괴라는 반민주의 후진국형 행정부 만능행태의 새삼스런 확인에 우리는 아연해지는 것이다.국회 정상화란 명분을 앞세워 여야당은 총리의 사과및 조사약속으로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정치적 타결을 서둘러 본 것도 국민들에겐 도대체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이다. 민주정치를 한다면서 그 민주정치의 대전제가 되어야할 소중한 원칙들이 마구 흔들렸음이 공식 확인된 마당인데 어물쩡 정치적 타협만으로 덮을 수는 없는 법이다. 철저한 진상파악과 책임규명및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마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비록 과거의 일이라지만 총리가 잘못을 솔직히 시인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로 한편으론 민주정치와 민주행정을 구현하려는 전향적 자세를 엿보이게도 했다. 하지만 그같은 자세도 엄정한 반성과 개선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실 오늘과 같이 복잡다기하고 규모가 커진 현대사회에선 행정부나 공무원의 역할도 자연 비대해지게 마련이다. 민주정치에서 말로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지만 실제로 나라일을 맡아 일상의 살림을 꾸려나가고 발전을 도모하는 주인공은 사실상 행정부가 이끄는 거대한 관료조직인 것이다. 이 관료조직이 청렴하면서도 전문화ㆍ효율화되어 있고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대민봉사자세로 움직여 나갈때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꽃피고 번영도 이룩된다. 반대로 관료조직이 특정권력자의 하수인이 되어 국민위에 군림하거나 관료 스스로의 특권유지 목적으로 운용될 때는 도리어 나라발전의 화근이 된다.
불행히도 우리는 지금까지 잦은 부정사례와 군림하는 자세,권력남용등으로 공무원들에 대해 어두운 시각을 지녀왔다. 이번의 예산전용등 탈법도 어찌보면 행정부나 관료조직이 정치적 중립원칙을 벗어나 권력의 도구로 시녀화되었음을 명백히 드러낸 것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같은 행태는 국민을 겁내지않는 행정의 독주이자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리는 중대문제가 되는것이다.
오늘날 국가재정의 확대와 엄청난 예산의 집행은 행정부와 관료조직의 역할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그래서 세계의 석학들은 그 나라의 발전은 관료조직의 효율성과 전문성에 달려있다고 앞다퉈 강조한다. 그리고 소련등 공산권이 개혁을 강조하면서도 성공을 못거두는 것도 과거의 타성에 젖은 거대한 관료조직이 걸림돌이 되고있다고도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의 충격이 과거의 어두운 정치적 공무원상이나 행정부 독주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민주적 행정,중립적 공무원상으로 돌아가는 출발점의 아픈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아울러 행정부 스스로의 노력과 민주적인 감시장치의 강화등 대책마련도 정치권에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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