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방이 냉전서 승리했는가/미 좌파 역사학자들 세미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방이 냉전서 승리했는가/미 좌파 역사학자들 세미나

입력
1990.06.27 00:00
0 0

◎“미국이 이겼지만 군비등 엄청난 대가”/“소서 자진중단… 제3세계 경제침투소지”/일ㆍ서독만이 「승리의 열매」… 조기종식 실패 따져야서방세계는 과연 냉전에서 승리했는가.

소련의 공산독재폐기와 동구권의 공산체제붕괴등 사회주의진영의 대변혁은 서방세계,특히 미국의 보수우익으로 하여금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선언케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축으로 한 미국의 냉전논리를 신랄히 비판해 온 서방의 좌파이론가들은 냉전종식의 의미를 냉전적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보수우익의 역사관에 대한 경계를 다시 촉구하고 있다.

냉전종식을 둘러싼 이같은 이데올로기적 논쟁은 어떤 의미에선 「이상적공동체」를 향한 인류의 모색이 계속되는 한 끝나지 않을 논쟁이다. 그리고 현재 맞고 있는 냉전종식은 좌우파 모두에게 세계관을 새로이 정립해야 할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미국의 대표적 좌파역사학자들은 최근 이 「도전」에 대한 최초의 집단적 지적응전을 시도했다. 75명의 이들 학자들은 지난 3월 69세로 타계한 수정주의 역사학(뉴레프트)의 대부 윌리엄ㆍ아펠만ㆍ윌리엄스를 추모하는 세미나를 열고,사회주의의 변화와 냉전종식의 역사적 의미를 토론했다.

이 토론에서 좌파학자들은 서방이 냉전에서 승리했는가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동구권의 변혁이 냉전과 미국의 대소봉쇄정책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는 수정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다. 주요토론내용을 요약한다.

▲마릴린ㆍ영(뉴욕대)=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소련이 냉전을 중단했을 뿐이다. 이 두가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크리스토퍼ㆍ라시(로체스터대)=내키지 않더라도 우리는 냉전에서 서방이 승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일방적 군축,동유럽의 포기,국내정치개혁등 고르바초프가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소련의 과거역사를 묵시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의 지도자들을 왜소하게 만드는 대담성과 독창성을 가진 정치가다. 그러나 그는 대담성과 상상력을 갖고 소련의 국내외적 실패와 위기에 대처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가 소련제국의 붕괴뿐 아니라 사회주의의 몰락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숙고해야만 한다.

물론 여러측면에서 소련제국은 사회주의의 본질에 반하는 요소를 갖고 있다.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들은 서구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로 발전하고,동구권과 소련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즉,민주주의를 향해 진보할 것으로 기대해 왔다.

그러나 동서 모두 기대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서방은 논외로 하고,오늘날 동구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의 인간화」가 아니라 사회주의 자체의 급속한 포기다. 동구와 러시아의 대중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상실하고 있는 것을 서방자본주의는 즐거워하고 있지만,우리는 이에 동참할 수 없다.

서방이 냉전에서 이겼다고 하지만 서방 특히 미국은 승리의 열매를 공유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냉전의 대가로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천문학적인 군비지출은 보건과 교육 등 복지분야의 상대적 낙후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냉전은 시민사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 토론을 질식시켰으며,미국정치를 비밀주의와 거짓으로 오염시켰다.

다만 서독과 일본처럼 군비의 부담을 지지않았던 몇몇 나라들이 고도의 생산성으로 미국이 지배하던 수출시장과 심지어 미국 국내시장까지 잠식하며 냉전의 열매를 먹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정치적 논의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양자택일적 형태로 진행돼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월터ㆍ르페버(코넬대)=1959년에 발간된 「미국외교정책의 비극」을 통해 경제적 이윤추구에 입각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냉전외교의 부당성을 지적한 월리엄스의 견해는 여전히 타당하다. 문제의 핵심은 서방이 냉전에서 승리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미국이 냉전의 조기종식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미국이 보다 일찍 냉전을 포기했다면 오늘날 보다 강한 정치ㆍ경제적 지위를 확보했을 것이다.

▲로이ㆍ가드너(랏저스대)=동유럽 독재정권들의 몰락으로 서방보수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들의 정치적 자산 하나를 잃게된 셈이다. 동유럽 독재자들의 존재는 서방여러나라의 대중들에게 만일 그들 나라가 서방동맹에서 이탈할 경우 맞게될 최악의 결과를 보여주는 성능좋은 경보장치로 기능했었다.

▲만닝ㆍ마라블(콜로라도대)=동유럽의 변혁과 냉전체제의 붕괴를 제3세계의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고르바초프가 제시한 「유럽일가」구상이나 급격히 결속되고 있는 동서유럽경제권은 제3세계의 시장을 침탈하는 새로운 「리바이어던」의 출현을 예고한다.

이제 유럽중심주의의 기치아래 서방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편입된 소련 및 동유럽국가들도 제3세계의 시장에 침투해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을 수탈해 갈 것이다.

▲레오ㆍ리버포(조지 워싱턴대)=이상의 토론은 냉전시대에 대한 평가의 출발에 불과하다. 냉전의 종식은 보다 온건한 형태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적 자유주의의 시대가 개막됐음을 의미한다.<김현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