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은 그야말로 나라전체가 3선개헌을 둘러싼 찬반논쟁으로 열병을 앓았던 한해였다.당시 박정희정권의 핵심간부들이 주축이 되어 국민의 뜻을 거역하고 국민을 속여가면서 장기집권을 위해 공작과 음모형식으로 힘으로 밀어붙인 개헌이 얼마나 큰 폐해와 부작용을 낳았는가는 그후의 정치사정이 웅변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3선개헌의 실패와 비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국민을 기만하고 무시한데서 비롯됐다. 67년 6월8일 실시된 7대국회의원선거에서 박정권은 3ㆍ15에 필적하는 온갖 불법부정의 방법으로 압승을 거두었다.
선거때 단한마디의 개헌얘기도 하지 않았고 더구나 박전대통령은 『2연임후 은퇴하겠다』고까지 공언했으나 속으로는 진작부터 개헌을 구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68년까지만해도 박정권은 개헌얘기만 나오면 『사실무근이다』 『현행헌법에 3선개헌은 못하게 돼 있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69년 연초에 들어와 윤치영공화당의장서리가 슬그머니 운을 떼었다. 『조국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국민이 원하면 헌법을 고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어 박전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내임기중에 개헌을 원치 않으나 일부조항에 문제가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했고 7월들어 유진우신민당총재가 공개질의를 통해 개헌에 대한 진부를 밝힐 것을 요구하자 『개헌의 찬반은 국민에게 달려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드디어 7월25일 폭탄선언으로 속셈을 드러냈다 『개헌안을 남겨놓고 정부신임을 묻겠다. 국민투표서 부결되면 사퇴하겠다』고 국민에게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결국 공화당은 내부진통끝에 개헌안을 제안,농성중인 야당의원들 몰래 새벽녘 국회 제3별관에서 일방통과시키는 파행을 저질렀다. 그야말로 「절대로 하지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뒤 「절대로한다」로 태도를 돌변,국민을 속인 것이다.
필자가 새삼 21년전에 있었던 3선개헌의 전말을 서술한 것은 시행착오의 과정이 지금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이 내각책임제개헌을 제창하고 또 이번 국회대정부질문에서 여야가 찬반논쟁을 전개,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즉 여당은 『국민화합 사회적통합구현 지역감정해소 통일대비를 위해서는 원내다수당이 국정의 책임을 지는 내각제가 보다 합리적』이라고 한 반면 평민ㆍ민주등 야당측은 『민자당의 3계파가 장기집권과 관련,차례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음모로서 이번 국회는 개헌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여야간의 내각제논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이보다 민자당내부의 「발맞추기」가 더욱 미묘한 듯 싶다. 민정ㆍ공화계는 3당통합때 이미 합의한데다가 강령에 포함시킨 만큼 당론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하고 있으나 김영삼대표의 민주계는 일부 국민과 야당의 반발을 감안,『아직 거론할 때가 아니다』 『야당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관망하는 자세다. 이같은 태도에 대해 다른계파는 장차 정세흐름을 고려,승산이 보일 경우 김대표가 대통령직선제를 지속시키려는 양다리 작전이라고 꼬집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민자당은 노대통령의 북방외교성과의 PR와 경제회복등 민생수습을 내세워 당분간 내각제논의를 접어두기로 했지만 올하반기를 시작으로 내년 한해는 개헌논란으로 떠들썩한 한해가 될 것은 거의 틀림없을 것 같다.
여기서 필자는 민자당이 장차 내각제개헌을 계획대로 추진하고 또 부작용과 의혹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할 준비와 태세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내각제에 대한 당론을 확고하게 정립하는 일이다. 물론 강령에 「…의회와 내각이 함께 국민에게 책임지는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한다」고 고쳐 내각제를 시사한것은 과거 국민을 속였던 3선개헌때에 비하면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국민수준을 생각할 때는 솔직하지 못하다. 왜 뚜렷하게 「내각책임제를 지향ㆍ구현한다」고 못박지 않는가. 이와 함께 추진방법에 대해 각계파간의 이해와 견해차가 있겠지만 충분한 검토와 연구를 통해 분명히 한 목소리로 정돈해야 한다.
둘째 내각제안을 국민공론에 부치는 것이다. 지난날의 개헌처럼 집권세력의 핵심인사들이 밀실에서 작성,국민에게 폭탄선언형식으로 제기하지 말고 당에서 골격과 방향ㆍ원칙만을 제시하여,국민각계각층의 찬반논의를 유도하는 일이다.
온국민이 참여하는 형식으로 개헌의 당부는 물론 구체적 내용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내각제개헌의 참다운 이유와 배경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일이다. 역대집권당들이 했듯 막연히 「국민이 원하고 보다 민주적이다」라는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온국민이 5공시절 그토록 열망했던 대통령직선제를 왜 수년만에 국가의 최고기본법을 통해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가하는 당위성과 명쾌한 논리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내각제로의 전환이 야당이 주장하고 꼬리를 무는 소문대로 노대통령임기만료후 여당내 각계파 보스들간의 순번적인 권력장악,즉 위인설관 여부에 대해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헌법의 제ㆍ개정은 언제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해야 한다. 끝으로 내각제를 실현하는데는 필수적인 제반장치들,각종 부수적인 제도를 하루빨리 서두르는 일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자치제의 완벽한 실시다. 전세계의 내각제 성공국가치고 지방자치가 부실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민자당이 장차 내각제를 원만하게 추진하려한다면 우리국민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헌법을 손질한다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부터 겸허하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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