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정상회담이 직접계기로/소,동방정책 걸림돌 인식/“2개섬만 우선”에 일선 “일괄타결”고집/자민당 일부의원 “사버리자”안 주목【동경=정훈특파원】 2차대전후 소련이 점령중인 일본의 북방4개도서 반환을 둘러싸고 지금 일ㆍ소양국간에 수면하의 협상이 한창이다.
두나라간의 이같은 막후교섭은 한소 정상회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그의 동방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마지막 걸림돌이 바로 이 북방도서문제라고 인식,협상가능성을 시사한데서 비롯된다.
특히 고르바초프로서는 거의 파탄에 직면한 소련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는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절실한 형편인데,일본은 북방도서의 반환없이는 소련에 협력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자세여서 지금의 흥정은 일본이 유리한 편이다.
2차대전후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북방4개도서는 홋카이도(북해도)의 동북단에 위치한 전략의 요충지. 가장 큰 섬이 에토로후(택착) 도로 3천1백39㎢,다음이 구나시리(국후)도1천5백㎢,시코탄(색단)도2백55㎢,하보마이(치무)제도 1백2㎢순이다.
이 섬들은 지난 1855년까지만도 제정러시아 땅이었다. 아직은 에도(강호)시대였던 이해에 시모다(하전)에서 일ㆍ로화친조약을 맺어 러시아는 버려진 땅이던 이섬들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태평양전쟁이전 일본은 이곳을 어업전진기지로 개발했으나 일본의 패전직전에 참전한 소련군이 진주,전략요충화했다.
일본은 빼앗긴 이 섬들을 되찾기 위해 지난 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때 영유권을 주장,문서에 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소련은 이조약의 조인을 거부,지금까지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다. 소련측은 북방4개도서는 원래부터 소련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양국간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ㆍ소양국은 지난 57년 국교를 정상화하면서도 평화조약을 맺지 못한채 「공동선언」이라는 기묘한 형식으로 조약을 대신했다. 이때 소련은 『북방 4개도서 가운데 시코탄도와 하보마이 제도등 2개도서는 두나라간에 평화조약이 체결되면 일본에 반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약속도 지난 60년 미ㆍ일간에 안보조약이 체결되자 소련측이 일방적으로 철회해버려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현재 소련은 북방4개도서에 직접 미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잠수함기지를 비롯,일본을 커버하는 전투비행장,각종 전자정보망 등을 설치,완전 요새화했다. 소련은 군사적으로 민감한 이섬 주변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다. 그러나 일본 어부들은 황금어장을 찾아 섬가까이 접근하는 일이 많아 지금까지 1천2백67척,9천5백명의 어부들이 나포되는 수난을 겪어왔다.
이번 고르바초프의 북방4개 도서반환협상 시사는 소련이 먼저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일본으로서는 여유가 있는 셈이지만 아직은 수면하에서 서로의 조건제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소련은 우선 시코탄도와 하보마이제도를 먼저 반환하고 에토로후도와 구나시리도는 시간을 갖고 협상하겠다는 입장이다. 소련은 반환문제의 기본전제로 이곳에 설치돼 있는 군사시설물 이전비용을 일본측이 부담해야 하며,에토로후와 구나시리도는 비군사화지역으로 공동개발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4개도의 일괄반환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정부와 집권자민당은 지난 81년 2월7일을 제1회 「북방영토의 날」로 제정,해마다 성대한 행사를 가져왔으며 제10회를 맞은 금년에는 어선들이 선단을 이루어 이 일대해역에서 집단시위도 한 판국인지라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한편 자민당내 일부 의원들 가운데는 4개도서를 모두 사버리자는 매수안도 제기되고 있어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정부는 내년 1월로 예정돼 있는 고르바초프의 방일전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결론이 도출돼 고르바초프가 일본국민들 앞에서 이를 직접 발표를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어 지금부터 두나라간 협상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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