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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인의 차 「카트」(특파원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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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인의 차 「카트」(특파원24시)

입력
1990.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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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러일종의 「흥분제」 전국민 애용…/얼마안되는 농지에 너도나도 “국력낭비 심각”【사나(통일예멘)=윤석민특파원】 예멘의 통일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카트(Qat:Kat)이다. 모든 예멘인이 오후한때 즐겨씹는 카트는 포플러의 일종으로 흥분각성 성분을 지니고 있는 관목의 잎사귀이다. 남ㆍ북예멘의 지도자들이 복잡하고 골치아픈 통일논의때 카트를 서로 씹으며 협상을 벌여 의외로 쉽게 통일에 합의할 수 있었다는 「농담아닌 농담」이 중동외교가에 뒷얘기로 전해지고 있다.

카트의 작용으로 저절로 이루어진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서로가 본심을 쉽게 내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카트는 예멘인들이 친교를 나누는데 없어서 안될 존재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각료들도 일과후 (하오 2시) 카트를 씹으며 정담과 휴식을 취하는가 하면 상인들의 상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가정집마다 우리의 사랑방같은 카트전용방이 꾸며져 있고 여기서 카트를 씹거나 카트를 원료로 한 「아라비안티」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다

철저한 남녀차별의 회교사회이지만 부녀자는 물론 어린아이들에게도 카트는 허용되고 있다.

예멘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카트를 생산한다는 이브(IBB)지방을 지나며 도로변에 있는 5∼6세 가량의 꼬마상인들로부터 카트 두다발을 샀다.

호기심도 있었지만 장거리 운전시 졸음을 예방하는데 즉효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한쪽볼이 불거지도록 한움큼 입에 넣고 씹었더니 기분이 좋긴했다. 남에게서 예기치 않은 친절을 받고 두피밑이 뿌듯이 달아오르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 상당시간 지속됐다.

금세 턱뼈가 아파와 씹기를 그만두었지만 예멘인들은 4시간은 족히 씹어댄다고 한다.

예멘인들은 카트가 부작용과 중독성이 없는 「신비의 약초」라고 예찬론을 펼치지만 인이 박히는 것은 분명했다. 미국에서는 카트를 대마와 똑같이 취급,향정신성의약품으로 묶어 판매는 물론 반입마저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또 같은 아랍권에서도 사우디등은 카트의 사용을 법으로 금하고 있고 사용이 허용되고 있는 곳은 예멘을 포함,지부티ㆍ소말리아 등 세나라뿐이다.

카트가 굳이 예멘인의 정신을 좀먹는 습관성 「해초」라는 징후는 발견할 수 없었지만 그 폐단만은 심각해 보였다.

그중 하나가 카트로 인한 국력의 낭비다. 척박한 땅이 많은 예멘에서 그나마 경작가능한 농지에는 대부분 카트가 경작되고 있었다.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발2천m대 고원에서 자라는 특용작물에는 일손이 많이간다. 채취 하루만 지나도 시들어버려 재배에서 유통까지 많은 인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나라전체가 늘 카트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점심무렵 시장 한모퉁이나 산지의 공터에 어김없이 서는 카트시장에 발길이 뜸해질 무렵부터 저녁때까지는 온나라가 카트에 몰두해 있는 「잃어버린 시간대」처럼 여겨진다.

시간ㆍ인력도 문제지만 여기에 드는 비용도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다. 달착지근한 즙이 많은 애순이 최상품으로 1회용 한다발에 60리얄(4천원 상당)이상을 받는다.

다 자라서 질겨진 잎새는 20리얄정도면 살 수 있지만 공무원의 월평균임금이 3천5백리얄임을 감안하면 월급의 3분의 1을 카트씹기에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값이 비싸기 때문에 너른 카트밭 곳곳에는 카트를 지키는 원두막이 세워져 있다. 꼭 우리의 첨성대같이 생긴 망루는 말이 원두막이지 돌로 쌓은 요새같다. 그안에 들어앉아 있는 밭주인은 무단침입자를 향해 발포,사살해도 아무런 법적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이러한 폐단때문인지,아니면 서방인들의 분석처럼 노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인지 지난달까지 사회주의체제였던 남예멘에서는 카트가 주말(회교력의 목ㆍ금요일)에 한해서만 허용됐었다.

그러나 통합이 되면서 남예멘측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가 카트의 전면자유화다. 남예멘인으로서는 북쪽에 대해 항상 부러움을 가지고 있던 또하나의 「자유」를 성취한 것이다.

마침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에 도착한 시간은 하오 3시께였는데,거리는 텅 빈채 사람의 종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알고보니 새로 찾은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모두가 집에 들어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 한사람이 하루 한그루씩 먹어치워 없애자』고 꼬집는 소리가 나올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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