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2,54,60,60,62,69,72,80,87무질서하게 늘어놓은 것 같은 이 수수께끼의 두 자리 숫자들은 모두 우리 헌법의 운명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연도들이다. 48년은 헌법을 제정한 해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 헌법을 개정한 연도를 차례대로 나열한 것이다. 48년 제정이래 무려 9번을 개정했는데 60년에는 두번이나 개정했고 평균 4년에 한번꼴로 헌법을 손질한 셈이다. 제정당시의 원형이 남아있을리 없는 누더기헌법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87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현재의 헌법은 평균 개정수명을 넘기지 않기위해서인지 다시 10번째 개정을 위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전개되고 있는 개헌논의는 지나간 9번의 경우와는 좀 다른데가 있다.
무엇보다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것은 현행헌법이 여야와 국민모두의 합의로 이뤄졌던 최초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지나간 개헌이 거의 특정인의 집권연장과 정변에 의해 강압적이고 변칙적으로 이뤄진데반해 9번째의 개정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방법과 절차를 거쳐 온 국민의 박수속에 이뤄진 것이다. 즉 여야간의 유례없는 타협을 거쳐 공동발의 되었고 국회는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며 국민투표에서도 93.7%의 압도적 찬성을 얻어 확정되었던 것이다.
이 9번째의 개정은 열화같은 6월 국민항쟁과 이를 받아들인 6ㆍ29선언에 의해 극적으로 이뤄진 감격의 대통령직선제 헌법이다.
이같은 국민적 합의의 소산물인 현헌법에 의해 노태우대통령이 직선 대통령의 영예를 누리고 있고 한국민주화의 상징으로 국제사회에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이 헌법을 바꾸려고 하는지 그 이유가 잘 나타나 있지 않은 것도 이번 개헌 논의의 특색이다.
지나간 8번의 개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의 장기집권,4ㆍ19혁명,5ㆍ16혁명,박정희대통령의 장기집권,10ㆍ26사태와 5공화국의 출범 등이 개헌을 하게된 동기고 원인이었다. 9번째 개헌은 국민적 혁명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10번째 개헌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아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불과 2년반전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채택된 헌법이 지금 개정되어야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당시 대통령직선제의 폐단이 많이 지적되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탄생한 것이 6공화국이었고 6공에 들어와서 「약한 정부」론이 많이 대두되었지만 그 원인이 현행 헌법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반국민들이 현헌법이 잘못되었다고 대대적 서명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때문에 벌써부터 개헌논의가 본격적으로 나와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개헌을 추진하는 민자당측에서 내각책임제 얘기를 많이 내세우고 있는데 그에 앞서 현행 헌법이 안고있는 모순과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그 헌법에 의해 탄생된 현정부가 국정운영을 해본결과 느낀 개헌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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