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일정 통일땐 “입지상실”우려/통합후 조정기거쳐 국민 우선회제동 의도동독의회가 17일 갑자기 「서독과의 즉각적 통일」을 안건으로 채택한 것은 독일통일이 임박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돌발사건의 이면에 통독과정을 둘러싼 동ㆍ서독 정치세력간의 갈등이 놓여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ㆍ서독이 통일을 향해 바삐 달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동독의회가 재통일 문제를 안건으로 채택한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 못된다. 다만 이날 결의가 전혀 예정되지 않은 사태진전이란 점에서 독일내외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17일의 동독의회는 당초 서독과의 통일준비에 필요한 사회구조조정등을 위한 헌법개정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것이었다. 또 일요일인 이날 의회를 연 것은 지난 53년 6월17일의 「반소의거」 3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기념행사때문에 헬무트ㆍ콜 총리등 서독지도자들도 대거 회의를 참관했었다.
그런데 이날 예정에 없던 「즉각 재통일」문제를 논의 안건으로 들고 나선 것은 조기통합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좌파 야당세력이었다. 그리고 「동맹90녹색당」연합이 제기한 이 동의안은 「조기통일」이란 대원칙을 지지해온 여야의원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그대로 채택됐다.
그러나 이 결정은 조기통합론자인 드메지에르 총리의 집권독일연맹은 물론 방청석의 콜총리등 서독여당지도부를 크게 당혹케 했다. 그것은 동독야당측의 전격제안이 조기통일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동ㆍ서독 집권세력이 추진해온 통일절차를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드메지에르 총리는 곧 『즉각 통일은 좋지만,최선의 형태가 돼야 한다』며 반대입장을 천명,의원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문제의 「즉각재통일논의」를 4개 특별위원회에서 본격심의토록 하자는 반대제안을 통과시켜 「즉각 재통일」에 관한 역사적 표결을 연기시켰다.
이같은 혼란스런 사건의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통일의 구체적 과정에 복잡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이 놓여있다. 그리고 그 갈등요소들중 동독의 좌ㆍ우정치세력들간에 통일을 위한 체제정비내용 및 통일시점을 놓고 이해가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드메지에르총리의 기독교민주연합(CDU)을 주축으로 한 동독집권독일연맹측은 통일의 구체적 일정을 명백히 밝히진 않고 있다. 그러나 오는 12월의 동독연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둔뒤 서독기본법 23조에 의한 서독에의 흡수ㆍ합병절차를 밟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통일의 구체적 절차는 동독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서독의 콜총리의 집권기독교민주연합(CDU)측도 같은 복안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오는 12월의 동ㆍ서독선거는 합동총선으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동ㆍ서독의 우익집권세력들이 이같은 통일플랜을 추진하고 있는 표면상 명분은 이방법이 통독을 가장 용이하게 할 것이란데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통일후 우익세력이 계속 주도권을 장악하고,통일후체제도 우익지향적으로 이끌려는 정치적계산이 깔려있다.
우선 동독쪽에서 볼때 현집권세력은 다음달 2일의 경제ㆍ화폐통합을 필두로 완전통일이전에 동독의 사회ㆍ경제체제를 「서독형」으로 전환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독화」에 따른 경제적혜택을 크게 기대하고 있는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12월 연방선거에서도 승리하려는 계산인 것이다. 이 연방선거는 지난 52년 폐지된 연방제를 부활시키는데 따른 연방상원선거다.
이 동독집권여당의 정치일정표는 서독 콜정부의 정치적이해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콜총리가 이끄는 집권기독교민주연합은 통독의 열기속에서 열린 지난번 연방상원선거에서 패배,다수당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차기총선에서 강력한 사회민주당(SPD)의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콜정부는 동독의 기독교민주연합세력이 계속 우위를 유지,통일후 자동적으로 자신들의 동반세력으로 통합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동독공산당의 후신인 사회민주당(SPD)을 비롯한 동독의 좌익야당세력들은 서독 기본법23조에 따른 흡수ㆍ합병방식의 조기통합이 대세가 돼있는 상황에서도 연방제정착,사회구조정비 등에 시간이 필요함을 들어 「12월 합동총선후 즉각 통합」방식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우익집권세력이 동독의 완전한 「서독자본주의화」를 위해 통일에 필요한 적응조치를 일부러 외면,동독체제의 와해를 초래하고 있다고까지 비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차라리 즉각적으로 통일을 단행하고,일정기간의 조정기를 둔뒤 합동총선을 실시하자』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는 조기통합후 조정기간을 거치는 동안 동독국민들이 맹목적 우선회의 위험을 자각,서독 사민당류의 정책을 선호하게 될 것이란 기대감에서이다.
결국 17일 동독의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통일과정의 진통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그진통들이 조기통일열기를 누를수는 없음을 입증했다고도 할 수 있다. 비록 「즉각 통합」을 표결하는데에는 이르지 않았지만,조기통합세력의 의도대로 결말이 났다. 여기에 경제통합에 장애가 되는 모든 헌법조항을 삭제하는 결의가 압도적 지지로 채택됐다.
이 의회결의가 이뤄지고 있는 사이 동독전역에서는 일요일인데도 모든 은행문이 열려 동ㆍ서독 화폐교환을 준비하기 위한 구좌를 개설하려는 동독인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동독체제의 해체와 서독으로의 합병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강병태기자>강병태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