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규국회의장께.6월 임시국회와 함께 선보일 새 국회의장의 국회운영 솜씨가 궁금해서 이런 글을 씁니다. 이번 임시국회에는 지방자치법등 더이상 미룰수가 없는 난제들이 줄줄이 걸려 있습니다. 이들 현안의 원만한 처리에 6공정치의 향방이 달렸다고 할 것입니다. 박의장의 7선관록에 거는 기대가 그래서 더욱 간절합니다.
이번 임시국회의 막중한 임무를 생각하면서,텔레비전 화면에서 익히 보아온 국회 본회의장 광경을 눈앞에 떠올립니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국회의 개ㆍ폐회식이나 본회의를 비추는 카메라워크는 언제나 비슷한 듯 합니다. 카메라는 먼저 의장 정면에 걸린 커다란 국회마크를 화면 가득히 클로스업합니다. 이윽고 카메라가 후퇴하면서 그 마크 아래 자리잡은 의장의 모습이 화면에 들어옵니다.
이런 화면을 볼 적마다 좀 안됐습니다만,속으로 쓴 웃음을 짓곤 합니다. 그것은 화면을 꽉 채운 국회 마크의 「혹」자 탓입니다. 마크도안은 분명 무궁화 한 가운데 「국」자를 표시한 것이겠는데 원형으로 처리된 글자의 바깥테두리(구)는 보이지를 않고 「혹」만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전에 보면 「혹」은 사방의 경계를 나타내는 「구」,땅을 나타내는 「일」,병기를 나타내는 「과」의 합자라고 합니다. 그 회의는 무력으로써 사경을 지킨다는 것으로,그 원래의 뜻은 나라(방)였으나 지킨다는 것은 남을 의심하는데서 연유하므로 「혹시나…」의 의사로 전화가 되고,「혹」만으로는 지킴이 미흡하다하여 「구」를 다시 더한 것이 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혹과 국의 발음이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옛날 투로 하면 국회나 혹회가 다 같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옛글의 소양이 깊지 못한 나는,언제나 국회마크를 「혹시나…」의 「혹」으로만 읽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 마크를 비추는 카메라가 무심치를 않아서 『혹시나 이번 국회는…』 『혹시나 이번 새 의장은…』하면서 눈을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폐회식때가 되어 카메라가 「혹」을 다시 비출때는,번번이 이번 국회도 「혹시나」했더니 「역시나」로 끝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쓴 웃음을 짓게 됩니다. 그것은 순금의 「혹」자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이 사람은 혹시나…』했다가,『이 사람도 역시…』했던 여러차례 경험과 상통하는 웃음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박의장에게 던질 물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회와 국회의원,우리정치권 전체를 향해 국민들이 느끼는 「혹시나…」와 「역시나…」의 악순환을 어떻게든 단절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물음의 뜻입니다. 박의장이 생각하는 그 방안은 어떤 것입니까. 7선관록을 지닌 박의장에게는 그럴만한 방안이 있으리라 믿어도 되겠습니까.
박의장은 화려한 정치경력,숨김이 없는 성품,재치문답 뺨칠 언변등으로 하여,정치부 기자들에게는 고마운 뉴스ㆍ메이커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국회의장 지명 직후 회견에서 박의장의 평소 소신이던 내각책임제의 향방에 질문이 집중된 것은 정면으로부터의 답변을 구하는 것과는 다른 속셈 탓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박의장은 그 물음에는 말로 『앞으로 사견은 말하지 않겠다』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신문의 정치 가십난이 조금은 쓸쓸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회견에서도 박의장의 재치는 역력했습니다. 『늘 양지만 걸어오셨는데…』라는 좀 짓궂은 물음에 『내가 야당을 했으면 지금보다 더 컸을 걸』하고 대꾸한 것입니다.
박의장의 그 말을 나는 에누리없이 수긍합니다. 그래서 박의장의 입지가 여ㆍ야 어느 쪽이든 박의장의 거취를 눈여겨 봅니다. 88년 12월 박의장이 여소야대의 곤경을 당한 민정당의 대표위원으로 취임하면서 『꼭 1년만 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무엇을 기약하는듯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기회있을 때마다 내각책임제를 말했던 박의장은 과연 꼭 1년이 지난 작년 12월 3당통합에 의한 보수연합등의 폭탄발언을 하고 그 말의 책임을 지듯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며칠 뒤 3당통합은 현실로 나타났고 그 몇달 뒤 박의장은 국회로 영전(?)이 됐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국회의장의 역할과 내각책임제를 연관짓는 말들이 나옴도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뒷공론에 대해서는 유구무언인채 박의장은 모든 문제를 국회로 수렴하겠다,내각책임제문제도 소수ㆍ반대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국회를 운영하겠다는 원칙론만 펴고 있습니다. 그 원칙이야 지당한 것이지만,그 기약이 「모양새를 갖춘 다수결강행」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 있습니까. 이번 임시국회의 원만한 진행으로 그런 걱정을 기우로 돌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박의장은 또 국회운영 제도개선의 복안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 큰 줄기야 따로 있겠습니다만,다음 두가지도 고려할 만하지 않은가 합니다.
하나는 역시 그 「혹」자 돌림의 국회마크입니다. 3부 각부처가 다 한글마크를 쓰는데 국회만 굳이 한자를 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법률 제6조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이 국회의결을 거쳤다는 당연한 사실도 생각해야 합니다. 마크도안을 고쳐서 「혹시나…」의 연상을 조금이라도 가시게 하는 것이 국회권위에 보탬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박의장 자신의 문제입니다. 작년말 박의장의 폭탄발언에는 대통령의 당적이탈문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박의장 스스로의 당적이탈도 생각함직합니다. 그것은 박의장이 밝힌 국회의장으로서의 포부에 부합할 뿐 아니라 국회의장,나아가 국회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보탬이 되는 일일줄 압니다. 그로해서 국회의장단이 당적과 당리를 초월한다는 새로운 전통이 선다면 그야말로 박의장답게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그런 생각을 해봅니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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