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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지원끊긴 아덴은“정지된도시”(윤석민특파원 통일예멘을 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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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지원끊긴 아덴은“정지된도시”(윤석민특파원 통일예멘을 가다:3)

입력
1990.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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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만 아파트 골조만 서있어/거리엔 영어잡지 범람… 사회주의 잔영속 근대화 몸부림통일전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은 기묘한 양면성을 지닌 도시다. 해안을 따라 들어선 산뜻한 빅토리아풍 건축물들과 회교 모스크사원의 돔 첨탑들이 뒤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로양편에 현대식아파트가 줄지어 있는가하면,깎아지른 산비탈위로는 움막이 빽빽이 들어찬 달동네도 있다.

거리에도 화장한 얼굴에 양장을 한 여자들과 차도르로 온몸을 감싼 전통복장의 여성이 공존한다.

이곳이 과연 얼마전까지 사회주의가 지배하던 땅인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어간판을 내건 서점에서는 몇주 지난 것이긴 해도 타임과 뉴스위크 등 시사주간지는 물론,북예멘의 수도였던 사나(현통일예멘수도)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영어판 단편애정소설이 가득했다. 가게주인은 지금까지 정부의 단속이나 규제는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덴 의과대학에서는 아예 모든 전공과목이 영어로 강의되고 있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니 여학생이 과반수를 넘는 것 같았다.

자생력을 지니지 못했던 남예멘의 사회주의는 개혁바람과 함께 소련으로부터의 지원이 끊기자 급격히 설자리를 잃고만 흔적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앙상한 골조만 남기고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단지며,외양만 그럴듯한채 내부시설물을 갖추지 못해 개원을 미루고 있는 종합병원 건물이 이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원조가 급격히 줄어든 86년이후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독립후 공산정권이 들어선 69년에 이미 시계바늘이 멈춰버렸는지도 모른다.

하루밤을 묵은 시내중심가의 앰배서더호텔은 철망을 여닫는 구식엘리베이터나 천장에 매달린 날개가 긴 선풍기로 보아 식민시대건물이 분명했다. 그나마 그 엘리베이터마저 고장이었다.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욕실의 변기는 뚜껑과 앉는 부분이 없어 진채였고 온수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욕조는 녹물과 때자국이 범벅이돼 사용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기가 막혀 항의하려해도 항의할 곳도 없었다.

도어맨은 현관문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그만이고 프런트는 숙박료를 받고 키만주면된다. 청소부는 하루한번 지정된 시간에 나와 쓸어주는 것으로 임무는 끝이다.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공산사회라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주인이 아니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게 들렸다.

이러한 아덴의 모습에서 사실상의 남북분단은 1893년 영국이 아덴을 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즉 이슬람전통문화권에 이질의 영국식민문화가 유입되면서 보혁간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는 생각이다. 이어 영국식민주주의를 대체한 사회주의가 허물어지자 결국 다시 이슬람문화에 통합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23년간 남예멘공산통치는 식민잔재를 세척한 기간일 수 있다.

그동안 남예멘의 체제는 인터코뮤니즘과 회교기본법이 어색한 공존을 해온 양상이다. 종교와 상극이라는 공산사회이면서도 전통문화인 이슬람을 완전히 저버리지 못한 느슨한 형태를 유지해온 것이다.

또한 재산소유형태에서도 남예멘사회는 일반공산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주택 소유권이 인정돼 있는가 하면 소규모 자영업도 허용돼,북예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시장인 수크(SUQ)가 여기서도 번성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공산화시 부호들이 국외로 탈주했지만 새로운 빈부간의 격차가 형성돼 그골은 갈수록 깊어진 양상이다.

그러나 남북통일선언이후 아덴의 남예멘인들이 점차 생기와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새통일정부가 아덴을 자유항으로 지정하면 옛날의 활기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화산의 분화구안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와 깊은 수심. 그리고 수에즈운하의 관문으로서 홍해와 인도양이 접하는 전략요충지인 아덴은 영국통치령이던 67년 이전만해도 뉴욕ㆍ리버풀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분주했던 국제항구였다. 그러나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서방선박의 뱃길이 끊어진뒤 소련해군기지가 들어서자 중동의 고립된 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찌보면 아덴시민들은 통일자체보다도 굶주림과 절망만을 안겨준 공산체제의 종식을 더반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통일에 따른 남예멘인의 불안심리가 점차구체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통일을 앞두고 물가안정을 위해 디나르화의 24% 평가절하를 단행했지만 아직도 남북간의 물가는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정부보조금을 타기위해 아침부터 국립은행창구앞에 줄지어선 연금수혜자의 눈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또 신통일정부는 외자유치의 일환으로 국유화조치때 몰수된 재산을 원소유자에게 환원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어 대량실업의 불안마저 깊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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