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성취 자신감 내정엔 곤혹/바깥서 보는 한국 국운 이번 계기 상승기류/국내정치ㆍ경제방황은 여전… 전력투구할 때국민들은 대통령의 얘기를 더많이 들어야 한다. 대통령도 일이 있을 때마다,상황이 변할 때마다 국민들에게 그의 의중을 밝히고 국정의 방향을 제시해 줘야 한다. 「민주」의 요체가 이런 「대화」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그 의미는 더욱 귀중해진다. 한국일보가 창간기념일을 맞을 때마다 대통령과의 회견을 마련해온 소이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올해의 사정은 좀 달랐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갑작스런」 회담이 발표되고 일본에서 돌아온 지 열흘 남짓에 다시 샌프란시스코로,워싱턴으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금년회견은 부득이 「해외원정회견」이 되고 말았다.
회견은 워싱턴의 한국대사관저에서 부시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 있었다. 대문 건너편에서는 20명 남짓의 시위대가 꽹과리를 두드리며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이 「분단고착」이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워싱턴의 6월은 원래 무덥다. 그런데 금년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도착할 무렵부터 선들하리만큼 맑게 개더니 계속 이렇게 화창하다는 것이다.
대신 올해의 워싱턴 여름에는 다른 열기가 있어 보였다. 바로 며칠전 미소의 두 정상이 만나 40여년의 대결구조를 「협력」으로 바꾸어 놓는 역사적인 이정표를 이룩했고 어쩌면 「마직막 냉전지대」라는 한반도에 변화의 시발이 될지도 모르는 한소 정상회담도 이땅위에서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분위기때문에 회견은 자연 한소,고르바초프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노대통령은 40여년간 적대위치에 서있던 공산종주국지도자 고르바초프와의 샌프란시스코 회담에 매우 만족해 하는 것이 마디마디마다 역연했다.
물론 어느 부분도 단정적인 말은 없었다.
하지만 「과일을 익도록 하자」는 고르바초프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김일성을 이렇게 설득해 달라고 조목조목 열거했을때 고르바초프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극히 공감하는 모습이었다고 대통령 스스로도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이 부분은 이날 회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회담결과의 상세한 발표가 있었음에도 국내외에는 지금 우리가 소련의 페이스를 앞질러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회의들이 있기 때문이다. 연 3일 노대통령과 미소 두 정상과의 만남을 심도있게 다뤄온 미국 주요신문들도 이번 회담이 궁극에는 남북통일에 이를 수 있는 긴장완화가 아시아에도 확산될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면서도 노대통령이 매우 낙관적인 반면 소련측은 그것이 남북한 관계진전등에 따라 가능할 것이라는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련의 「조심성」은 그들나름의 사정북한을 의식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는 묘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6ㆍ29를 출발시키고 그 활착과정의 내정에서 고정하고 있는 노대통령이나 페레스트로이카를 출발시켜 분출되기 시작한 경제불만과 소수민족문제로 만만치 않은 반대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는 고르바초프는 비슷한 국내적 상황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독일,오늘의 동유럽이 있게 한 페레스트로이카대외정책이나,숱한 잡음과 논란중에 끌고온 북방정책끝에 「한소 정상의 악수」라는 눈에 보이는 전기를 마련한 것까지 비슷하다.
고르바초프의 대외정책,일련의 화해행각을 두고 위기에 직면한 소련경제를 살리려는 목적에 초점을 맞추려는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차대전후 처음으로 전략핵무기를 감축키로 하고 독일을 통일에 이르게한 이 엄청난 「액면상의 변화」를 결코 평가절하해서도 안되는 것 또한 사실인 것이다.
「고전하는 내정」에 관해 물었을때 노대통령은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르바초프를 만남으로써 결국 전세계의 중요지도자와 모두 만나 「우리 문제」를 논의할 만된큼 외교적 성취에 버금가지 못하는 내정이 몹시 안타깝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국민들이 좀더 자신감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위기라고 하지만 우리의 역량은 이것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지금의 대외적 상승무드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의지와 희망을 갖고 나가면 위기는 극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귀국후 숱한 난제들과 싸워야 하는 것처럼 노대통령도 우리 정치의 표류,경제의 방황 등과 싸워야 한다. 외교란 탄탄한 내치에서 더 자신감을 갖고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치스타일의 변화도 기대해보고 문제해결에 좀더 투신하는 결단도 기다려본다. 한반도에 이미 닥친 커다란 변화를 동요없이 맞기 위해서도 그것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출발시켰던 「민주화」를 더욱 튼튼히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남은 임기중 가장 우선하는 소명이어야 할 것이다.
올림픽이후 우리에게 쏠린 시선이겠지만 바깥세상에 비쳐진 「우리」는 전에 비해 비할 수 없이 커져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의 표현대로 「상승무드」에 있는 것이다. 이 무드에 추진력을 보내는 일은 이제 국내에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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