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지금의 우리 자연을 금수강산이라 자랑할 수 있을 것인가. 산천이 쓰레기로 덮이고 독기를 뿜어낸다. 더럽히기는 쉬워도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 공해다. 환경공해에 대한 경각심이 날로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오염의 심각성이 더해간다. 눈ㆍ코ㆍ귀를 막고 살지 않으면 안될 환경이라면 생활의 질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서울의 관악산이 깨끗한 새 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온몸의 흙탕물을 씻어 낸듯 개운한 맛이 난다. 환경단체들이 벌인 대청소작전에 1만5천여명이 참가해 약 열흘동안에 걸쳐 산 쓰레기를 말끔하게 걷어냈다. 쓰레기가 2백톤가량 되었다니 끔찍하고 엄청나다.
이 사실 하나만 갖고도 우리의 환경이 얼마나 병들고 시들어졌는지 쉽게 알 만하다. 어찌 관악산뿐이겠는가. 대부분의 산하가 지금 무섭게 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눈을 뜨기 민망하고 코를 제대로 들 수가 없는 지경이다. 인적이 닿기만 하면 오물부터 깔린다.
환경훼손의 주범은 오물만은 아닐 것이다. 놀이철이 한창이다. 아늑한 계곡이나 유원지엔 시끌시끌한 소음이 한창 진동한다. 술에 취해 얼씨구 고성방가도 모자람인가,이젠 가라오케장치까지 끌어들여 신명을 돋우는 모양이다. 남이야 어떻든 아랑곳 않는다. 이쯤되면 눈ㆍ귀ㆍ코를 모두 막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오물과 소음공해로 인해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람답게 있지 못한다. 편안하고 조용하게 둘러 앉을 자리는 「불법영업」이 선점해서 자릿세를 받아내며 놀자판을 질탕하게 펼친다.
이러한 놀이행태는 두가지 측면에서 그 폐해가 막심하다. 하나는 자연과 인간을 괴롭히고 파괴하는 공해,둘은 시민의식과 공중도덕심의 부재로 인해 입은 피해다.
단조로운 일상을 달래보자는 놀이가 잠시의 쾌락을 안겨줄지 모르나 정도가 지나치면 결국 우리 자신을 해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의 산하가 썩어가며 정신적으로 짜증을 불러 일으킨다. 도심의 소음을 피해 자연속의 유원지로 갔다가 가라오케와 목청을 찢는 소리에 쫓겨 온다는 것은 한편 희극이며 한편 비극이라 할 만하다. 하늘이 떠나갈 듯한 놀이는 환경이기주의라는 규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연의 독점은 용납될 수 없다. 우리의 자연은 우리의 공유자산이며 나와 남을 위해 지키고 가꿀 대상인 것이다. 자연의 적막과 침묵은 정신건강의 활력소와 같다. 아무도 그것을 깨뜨릴 권리를 갖지 못한다. 왜 남의 귀에다가 소음을 강요하는지,또 그래야 속에 맺힌 한이 풀리는 것인지 자문을 한번쯤 해볼 만하다.
잘 산다는 것은 호사를 뜻하지 않는다. 쾌적한 환경속에서 건전한 삶을 누리는 게 행복의 기초인 것이다. 쓰레기 산을 청소하듯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씻어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이 없이는 우리의 삶은 더욱 피로해질 뿐임을 깨달아야 할줄 안다. 해마다 「환경의 날」을 건성건성 보내는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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