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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분당 중심으로 보면(신도시 문제없나:6·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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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분당 중심으로 보면(신도시 문제없나:6·끝)

입력
1990.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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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평이하 소형위주 바람직”/업자들 위한 평형배분 재조정/서민주택난 해소차원 공급을/단기간 대규모건설 부작용 우려/편의시설·교통대책 먼저 세워야미국대통령선거에는 여러 군소후보가 같이 출마한다. 그중엔 라루치라는 사람도 있다. 그는 기상천외한 발언을 많이 한다. 예컨대 키신저는 소련 KGB의 스파이라든가 반핵론자 러셀경이 2차대전 직후에 소련에 대해 핵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든가 등.

나는 그의 얘기를 재미있어 한다. 그 얘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발상의 기발함 또는 신선함 때문에 그의 얘기들을 귀담아 듣는다.

라루치같은 종류의 발상법을 우리는 흔히 음모론이라 한다.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배후에는 알려지지 않은,알려져서는 안되는 음모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신도시 입안과정의 무모함과 사업촉진의 성급함을 보면서 나는 라루치적 음모론의 상념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표면에 내세운 2백만호 주택공급의 구호아래 숨어있는 음모는 무엇인가. 무슨 다른 꿍꿍이 수작이 있지 않고서는 저렇게 서두를 이유가 도대체 없지 않은가. 계획의 졸속성,앞뒤가 뒤바뀐 절차,목적의 애매함 등을 엘리트 관료들이 모를 리 없다. 어느 대학교수보다도 더 현실감각이 뛰어난 관료들이 도시건설이란 백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치밀한 계획,냉정한 현실파악을 토대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또한 지금의 신도시건설이 수도권 정비계획과 모순되고 수도권 광역교통망 구상이 확정되지 않은채 진행되면 엄청난 교통량을 유발시켜 수도권 전체의 교통기능이 마비될 정도가 될 것임을 모를리 없다.

1977년에도 요즈음과 비슷한 투기붐으로 30만채의 주택이 건설되었을 때 겪은 자재부족과 인력난 사태를 그들이 잊어버렸을리 없다.

대규모 건설을 단시간에 벌일때 건설단가는 올라가고 질이 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벌써부터 각종 공사현장에서는 레미콘부족으로 난리를 빚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모순점과 부작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계획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그 배후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최근 나는 월간 옵서버에 실린 「6공 정치자금 대단위개발에서 온다」라는 글을 읽었다. 거기에는 ①6공화국의 특징은 대단위 개발사업이 많고 주택 2백만호 건설계획은 그 핵심이 된다. ②신도시계획은 문희갑(당시 경제수석)­박승(당시 건설부장관)­이규황(토지국장) 라인의 청와대 기획단에서 타부처를 배제한 채 폐쇄적으로 추진되었다. ③신도시 계획으로 지구지정된 곳의 주변땅값은 10∼20배로 뛰었다(특히 분당의 경우 지가가 폭등된 주변 수천만평의 임야를 6∼7개 재벌이 소유하고 있고 개발지구 지정이 이 소유임야를 절묘하게 비켜났다). ④일산의 경우 생산성이 떨어지는 주변임야를 놓아두고 수백년동안 가꿔온 문전옥답(절대농지)을 지정했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라루치적 시각에서 이 내용들을 해석한다면 투기를 통한 자본축적과 6공의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재벌과 권력이 짜고서 일련의 신도시건설을 추진했다는 얘기가 될수 있다.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보아 작년봄의 아파트값 폭등,재벌의 토지매점 금년봄의 전세값 폭등이라는 토지투기 드라마는 신도시 건설과 일련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도 될 수 있지 않은가.

작년 2월 건설부장관이 수도권 인구억제방침을 대통령에게 보고한지 불과 2달뒤인 4월 신도시계획이 발표된 것과 그 당시 사전누설문제가 국회에서 거론된 것,아파트 가격폭등이 건설부장관의 분양가 현실화 발언으로 계기를 삼은 것 등등이 모두 다 수상쩍어진다. 그러나 나는 이 음모론을 결코 믿고 싶지 않다. 나는 순진하게 신도시 건설을 노태우 대통령이 선거공약한 「서민을」위한 2백만호 주택건설의 실천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정부는 신도시건설이 독점재벌의 토지투기와 건설회사의 주택투기를 위한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계획과정을 정상화 시키고 서민 주택공급과 동떨어진 주택평형 배분을 재조정해야만 한다.

지금의 신도시건설은 택지개발 촉진법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이 법에 의해 규정된 지구지정절차만 따르더라도 지금과 같은 불합리한 지구경계가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당과 같은 괴이한 형태의 신도시 구역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 수 있는가. 중동,평촌,산본 모두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

고속도로에 의해 나눠진다든지,가운데를 파먹었다든지,불합리한 형태의 신도시구역은 결국 비정상적인 도시기능과 총투자비의 비효율적인 낭비를 낳게 될 것이다. 또한 모든 절차가 행정편의주의와 비밀주의에 의해 묵살되고 있다. 전체의 10∼15%에 불과한 금년도 공급물량을 착수하기 위해 2∼3개월동안에 인구 30만의 도시마스터플랜이 그려지고 있는 실정이고 3년만에 30만규모의 도시를 이룩하겠다니 과연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이다. 일본의 다마 뉴타운(계획인구 28만)만 보더라도 5년간의 계획끝에 착공했고 착공한지 25년이 지난 지금 겨우 14만의 인구가 수용됐다. 인간의 계획이란 항상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예측하지 못한 돌발사태가 있게 마련이며 더구나 인간의 생활방식 사고방식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하물며 몇십만이 모여사는 도시를 군대 「바라크」짓듯이 몇년안에 후딱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모든 좋은 도시는 오랜된 역사속에서 다듬어지게 마련이다. 신도시 일정도 되도록 늦추지는 못할 망정 서두를 이유는 아무데도 없다. 적어도 기본적인 간선도로망 상하수도가 준비된 다음 주택건설에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다. 엄청난 교통량을 예상하면서도 인터체인지 설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나중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후에 건설하는 식의 도시건설은 곤란하다.

또 5개 신도시 계획을 보면 이것은 도시계획이 아니라 건설회사에 의한 「점령지」분할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조각 조각 나눠진 땅덩어리들을 각 건설회사들이 최대의 이윤추구를 위해 설계하고 시공하는데 도시의 유기적인 기능체계라든가 도시성격의 부여같은 가장 기본적인 도시 설계요소는 구현될 길이 막막할 뿐이다. 더구나 1차분양 단지들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어 먼저 입주한 주민들은 계속 몇년동안 공사현장의 소음과 먼지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신도시건설이 진실로 「서민을 위한」 주택난해소를 위한 것이라면 15평이하의 소형주택건설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규모 분포를 보면 해마다 소형주택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표참조). 20평이하의 주택은 1970년의 83.8%에서 1985년의 45.5%로 거의 반이나 줄었다.

신도시에 건설되는 주택의 평균 평수는 거의 30평에 육박하고 있어 전국 평균크기보다 훨씬 높다. 주택난에 제일 많이 시달리는 영세민들의 대부분이 10평이하에 거주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신도시의 주택평형 분포는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회사의 분양편의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국이 2차대전 직후 심한 주택난에 시달릴 때 국내의 건축을 통제하여 공영주택 4호에 대하여 민간주택 1호의 비율로 건축을 허가한 정책을 본받지는 않을지라도 무절제하게 건설회사 위주로 평형배분이 이루어지는 것은 방지되어야 할 것이다.<조건영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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