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마지막유산 청산 전기”/시베리아개발 남ㆍ북한 협력 가능성/북한 “기정사실”인정,대미접근 예상/주한미군 철수는 미ㆍ소 합의 거칠듯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은 소련과의 관계정상화 촉진은 물론 남북한관계 등 동북아정세 전반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소련문제 전문가인 신승권교수(한양대ㆍ한소문제 연구소장)와 김유남교수(단국대 미소연구소장)의 긴급 좌담을 통해 정상회담의 의의와 한반도 주변정세에 미칠 파장 등을 점검해 본다. 좌담 진행은 한국일보 정경희 논설위원이 맡았으며 외신부 이상석기자가 참여했다.【편집자주】
□참석자
신승권교수〈한양대ㆍ한소문제 연구소장〉
김유남교수〈단국대ㆍ미소 연구소장〉
진행=정경희씨〈한국일보 논설위원〉
▲정경희위원=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한반도 분단사상 가장 커다란 정치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한소 정상회담의 의미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신승권교수=역사적으로 볼 때 구한말 조선과 러시아는 1884년 7월 수교 이래 1905년까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후 85년만에 다시 재수교를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당사국 차원을 떠나 엄청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초정치적」 진행
▲김유남교수=국제정치학적으로 보면 소련과 한국과의 수교는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 청산의 시작을 알리는 일대 세기적 사건입니다.
물론 최근 한국과 소련은 긴밀한 접촉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수교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리,그리고 「초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은 만큼 앞으로 풀어가야할 과제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정위원=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을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신교수=소련의 대한 접근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장기적인 구상에 의해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추진됐다고 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선언과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등에서 동북아의 군사ㆍ안보문제를 언급했던 고르바초프가 경제협력만을 위해 한국에 접근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한반도 문제가 소련의 국익차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한국과의 수교를 생각했을 것으로 봅니다.
▲김교수=원칙적으로 본다면 미소 정상회담이란 초강대국간의 대좌기회에 한국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파격적 입니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시절 미국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집트이스라엘간의 정상회담을 주선했듯이 이번 한소 정상회담도 미국이 상당히 깊이 개입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교수=소련의 대북한 영향력과 유대관계는 일반의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소련은 물론 독자적으로 대한정책을 결정하겠지만 이번의 경우 북한측에 사전양해 내지 동의를 구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소 정상회담이 결코 북한의 실질적 이익을 손상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데 일종의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편 미국으로서는 동북아에서의 변화를 주도하고자 하는 기본입장에서 한소 관계진전에서도 어느 정도 이니셔티브를 행사하려는 목적에서 한소 정상간의 직접 대좌를 주선 또는 간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위원=한소간 국교정상화를 이제 기정사실로 본다면,미국과 북한간의 관계에는 어떤 급격한 변화를 예상할 수 있겠습니까.
○미 북한카드 예상
▲신교수=미국은 한소 관계를 고려할 때 북한과 상당히 접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은 동북아 국제질서의 재편성과정에서 새로운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카드를 사용하면서 대북한 접근을 강화할 것 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동북아에서 미소는 유럽의 질서개편에 따라 역시 평화공존체제를 모색할 것이며 한국은 물론 이 지역의 국가들과 상호협력관계를 더욱 증진시킬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김교수=미국은 이미 북한과 북경에서 10차접촉까지 했으며 최근 북한은 6ㆍ25참전 미군유해 5구를 인도해 주는 등 대미 접촉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위성국가들은 거느리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소는 이미 외무장관이나 실무자급선에서 남북한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했다고 봅니다.
소련의 한국접근도 미국과의 사전 양해속에 이루어졌으며,미국 역시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만약 미국이 북한과의 접근을 시도한다면 역시 경제분야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위원=한소 국교정상화를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은 과연 어떤 것 일까요.
▲김교수=북한은 이미 한소 수교와 관련된 문제를 검토했으며 소련과도 충분한 협의를 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북한은 따라서 소련의 한국 접근을 당연한 기정사실로 인정하면서 북한에 유리한 점을 찾고자 할 것 입니다.
소련이 한국과 경제협력을 하는데 있어 북한은 이에 협력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한국은 시베리아에서 천연가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 파이프라인이 북한을 거쳐 올 수 밖에 없으며,시베리아개발등에 있어서 북한의 인력을 사용할 가능성도 높다고 봅니다.
남북한과 소련의 3각협력이 경제부문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신교수=북한과 소련간의 관계로 볼때 북한은 소련의 요청에 따라 한국이 참여하는 경제분야에서 협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소련은 최근 북한을 비난하는등 소북한관계가 경화되는 듯 하지만 경제와 군사부문에서 전적으로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이 대세인 한소 수교를 거스르면서 소련측과의 유대를 단절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북한은 또 현재 미국과의 접촉을 강화하면서 한소 수교에 따른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소련의 세계전략으로 볼때 한국이나 북한이 중국쪽으로 경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오히려 남북한이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 소련에는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소련측은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교수=소련은 89년 중반이후 한국의 유엔가입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최근 유엔의 단일의석에 남북한이 함께 가입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국제적 추세로 볼 때 과거식으로 남북한 교차승인교차교류가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주장은 더이상 할 수 없을 것 입니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오히려 조심스런 개방을 하면서 미국에 추파를 계속 던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위원=한소 수교문제에 있어서 한국측이 좀더 실질적인 이득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김교수=소련이 한국과의 수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소련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점을 충분히 활용,보다 비즈니스 차원의 외교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소련과의 수교에서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야하며 한반도 분단을 종식시키는 방향으로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ㆍ군사 목적
▲신교수=소련은 그동안 한국과의 접근에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소련이 한국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미 언급했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때문이며,표면상 경제협력을 내세우고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정치ㆍ군사적문제로 귀착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소련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해 한반도에 이득이 가는 차원에서 보다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할 것입니다.
▲정위원=최근 소련연방의 해체움직임등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데요.
▲김교수=고르바초프가 권좌에서 물러날 수 있는 경우는 소위 노멘클라투라(특권계층)와 군부의 반란이나 인민혁명을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왜 대통령이 되었는가를 살펴본다면 그런 가정은 한마디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옐친,포포프 등 급진개혁파들이 고르바초프에게 도전한다고 보고 있으나 고르바초프는 오히려 이들 급진개혁파들에게 지금까지 비판의 입장에서 개혁을 논하기 보다는 직접개혁을 주도하도록 함으로써 개혁의 짐을 지운 것으로 분석됩니다.
▲신교수=소련은 이미 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폐지하고 새로운 체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연방대통령으로서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새로운 소련을 탄생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재 고르바초프를 위기로 모는 식의 보도나 분석은 너무 성급하다고 판단되며 상당기간 그의 권좌는 유지될 것으로 봅니다.
▲정위원=동북아에서의 군축문제가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서 당연히 논의될 것 같은 데요.
▲신교수=주한미군의 철수를 미국단독으로 결정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미국은 오는 2천년까지 주한미군의 3단계 철수계획을 밝혔는데 이것은 소련과의 타협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소련도 북한과 어느 정도 양해를 이룩했을 것이며 결국 동북아군축은 미소의 합의하에 남북한 관계를 고려한 장기적 구도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정리=이장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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