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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분당 중심으로 보면(신도시 문제없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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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분당 중심으로 보면(신도시 문제없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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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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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계획」다양한 환경개발 저해/개성없는 대단지화 우려/정보독점 투기도 부채질/시민등 공개적 참여과정 넓혀/주거형태의 융통성 보장해야서울 행정구역내의 인구증가율은 다소 둔화되었다고는 하나 1985년 인구센서스에서 벌써 1천만명에 다가서고 1988년에는 1천만명을 넘어버린 사실은 서울의 도시성장 잠재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1천2백만명의 계획한계선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서울의 엄청난 활동인구의 출입을 생각한다면 행정구역내의 인구수 만을 따진다는게 별 의미가 없어보인다. 근래의 성남,부천,안양,광명 등 서울 주변지역으로의 인구집중 확산은 한편 서울의 짐을 덜어주면서도 또 한편으로 밖으로 부터의 새로운 짐을 안겨주고 있다. 구미 서구도시들의 도심부도시화­교외도시화­탈교외­재도시화 과정을 우리는 단숨에 뛰어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년에 정부가 전격 발표한 분당·일산 등의 신도시 발상은 서울로의 인구집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더 늦기전에 이왕 몰려든 사람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계속되는 수도권 도시성장에 어떤 형태적 기능적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범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더 많은 주택을 짓고 또 전원도시(?)와 같은 쾌적한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기대해 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대형 개발사업들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의 인식일 것이다. 왜냐하면 『분당… 가진자들의 투기놀음판』이라고 신문에 기사화 될 만큼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한 결과가 생김으로 해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더 부각되는 것 같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아파트라고 하는 주거형태의 상품적인 교환의 시장성 때문에 아파트 거주자들은 좀 여유가 생기면 쓰던 아파트를 고쳐쓰기 보다는 쉽게 버리고(팔고) 새로운 아파트로 옮겨보려는 충동을 갖게 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새 아파트가 일시에 대량으로 공급될수록 여유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새 아파트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는 전만 못한 계층의 거주자로 채워지는 주택의 여과과정(Filtering down)이 필요이상으로 가속화되면서 주거환경의 집단적 계층화와 심지어 슬럼의 위험부담까지 가중시킨다.

대단위 아파트단지 개발은 개발의 경제적 수익성을 위해 필요한 수단일 수 있으나 사회적 생태적 환경시각에서 보면 적지않은 사회비용을 요하는 것이다. 대단위 단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자연의 파손도 아쉽지만 토지 수용과정에서 대지소유자들의 정든 삶의 터가 무너지고 이들의 다양한 환경 성장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슬픔이 있다.

이렇게 귀중한 토지와 공간의 큰 자리를 독점함으로써 더 좋을 수 있는 환경의 기회를 뺏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도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소시민이 힘들게 마련한 자그마한 자기땅에 자기돈으로 소박한 자기환경의 집을 짓고 싶어도 못진다면 난센스다. 예컨대 도시에서 60평 주거 대지면적은 작은 땅도 아닌데 미관지구 몇종 해서 90평이 되어야 집을 짓게 하는 지구지정과 최소대지면적 제한의 경직된 틀 때문에 도시의 다양한 주거 모자이크는 죽을 수 밖에 없으며 주위의 더 큰 땅 소유주에 유리하게 합병되는 소위 허울좋은 합동개발의 개성없는 대형건물들이 거만스레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소유주 하나의 집보다 10개의 소유주 10개의 집이 더 다양한 환경디자인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왜 미관지구 지정자들이나 심의자들은 모르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소규모 개발은 사회비용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는 환경변화적응의 융통성과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슈마허(Fritz Schumacher)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1974)는 생각을 분당·일산 등 신도시 개발에서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미국 시애틀시는 보잉회사의 지속적인 호황으로 지난 10년간 도심부는 건물의 고층 대형화로 몰라보게 변모하였다. 뉴욕식 상업주의의 맨해턴화의 도시공해를 염려하는 시애틀 토박이 지성인,또 이러한 대형개발의 압력을 직접받고 있는 도심부 주변 주민들의 시민그룹이 주축이 되어 작성한 「시민의 대안계획」(Citizens Alternative Plan:CAP)은 특별안건 시민투표 청원에 필요한 수의 시민서명 후원을 받아 1989년 5월16일 시민표결에 부쳐져서 62%의 찬성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시애틀은 향후 5년간(1994년까지) 사무소건물 신축규모를 연간 50만평방피트(약 1만4천평)로 제한하고 높이 제한도 사무소 지구는 4백50피트(약 38층). 현재 제일높은 건물은 76층으로,소매상업지구는 기존의 4백피트에서 1백25피트로 대폭 낮추고 용적률과 같은 밀도허가도 반으로 줄이고 있다. 이 계획안은 향후 2년간 시 의회가 수정할 수 없게 못박고 있다.

시민안(CAP) 반대론자들은 도심부 성장을 억지로 제한하면 시 재정수입이 줄어 도시공공사업이 위축되고 성장이 외곽으로 흩어져 전체적으로 교통이 더 혼잡해질 것이며 도심지 임대료가 상승한다고 주장한다.

또 5년간이나 시가 여러단체·시민그룹과도 협의 협상하는 등 합의점 모색에 상당한 노력을 했고 시 의회가 쾌히 승인한 1985년 도심부 종합계획을 시민들이 너무 감정과 기분에 의해 성급히 불신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금년 들어와서는 시애틀 주변지역의 광역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퓨젓사운드 지역정부협의회(Puget Sound Council of Government)가 시애틀 주변지역의 성장관리 장기종합계획을 「비전 2020년」이란 명제하에 여러계층의 시민그룹을 상대로 공청회·토론회·지상토론 등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전개하고 있다.

시민이 알 수 있고 시민에게 알려진 도시계획 도시개발은 누구에게도 독점되지 않는다. 그러면 투기성도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투기란 도시개발 같은 공공적인 행위와 정보가 독점되고 폐쇄되는 데에서 싹트는 것이다. 환경의 독점공해가 곧 투기의 원인이요 결과이다. 그러므로 정부나 공공기관의 최우선 사명은 모든 영역에서 독점공해를 제거하고 공개성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분당·일산 신도시 계획은 너무 성급하게 내놓은 「밀실작업」「용역처리」와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폐쇄된 독점적 계획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국토개발연구원이 개발주체인 토지개발공사로부터 용역사업으로 작성한 기본계획구상도 (마스터플랜)를 얼핏 보아도 목동주택단지의 것과 너무 비슷하다. 목동단지 마스터플랜은 그래도 현상공모해서 얻어낸 것으로 계획디자인 전문인들의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부분적이나마 반영되고 평가되는 기회가 있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분당·일산의 경우는 한 기관에서 기본구상은 다 끝내고 분당 시범단지의 부분현상설계를 기본구상도의 틀 안에서 강요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환경(디자인) 개발의 대전제는 더많은 사람들을 더 다양한 환경에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의 부족일 수도 있다. 역시 이러한 다양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한 곳에서 그것도 주어진 짧은 기간에 무언가 무난하게 만들어내야 하는 「용역처리」식 작업개념에서는 불가능 할 것이다.

더 좋은 생각,더 올바른 생각들은 시간이 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참여과정은 이를수록 좋고 목표,기본구상 같은 근본적인 주제일수록 더 효과적이다. 『현재의 변화는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과거의 변화는 설명될 수 있어야 하고 가까운 미래와의 연속성이 전시될 수 있어야 하고 보존과 적응성은 현재의 만족으로 소화될 수 있어야 하고 자기실험과 「미래의 박물관」으로 앞으로의 선택범위가 개발될 수 있는 이런 환경이야 말로 미래의 이미지 건설에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Kevin Lynch. What Time Is This Place?·1972·p.116)

엄청난 땅을 주무르는 예컨대 토지개발공사나 건설부 당국은 이러한 기회에 좀더 시민의 편에서 생각하고 시민에게 알려주고 물어보는 공공적 도덕행위가 전문적 기술행위보다 우선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조대성 성균관대교수 건축 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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