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관심이 쏠렸던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가 24일 막을 올렸다. 우리가 평양의 최고인민회의에 새삼 관심을 갖는 것은 동유럽공산권의 붕괴로 시작된 동서냉전의 종말이 북한측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의문」과 기대때문이었다.그러나 이러한 희망적 기대는 현실과 멀다는 것이 첫날 회의에서 재확인됐다. 이날 회의는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나가는 것은 역사발전의 기본추세이며 인류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김일성의 시정연설로 시작됐다. 예상했던 대로 북한은 민주화개혁과 개방을 거부한다는 것을 맨 먼저 선언해놓고 회의를 시작한 꼴이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 부자세습체제가 한걸음 구체화됐다. 지금까지 당직만 갖고 있었던 김정일이 국방위원회의 제1부위원장을 맡아 정식으로 국가기관에 자리잡은 것이다. 이로써 김정일은 군을 장악ㆍ관장하고,권력세습의 실질적인 기반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보기에 이날 김일성이 내놓은 남북한 유엔가입안은 새로운 제안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남북한 동시가입 반대가 아니라 남북한이 한 의석에 같이 앉자는 제의다.
그러나 남북한이 한 의석으로 가입하자는 것은 바로 「고려연방」의 이름으로 가입하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결국 김일성은 전쟁상태와 대결체제를 포기함으로써 이땅에 평화와 긴장완화를 가져오기 보다는,실질적으로 적화통일노선인 고려연방을 고수하고 있다. 남북이 한 자리에 앉자는 주장은 우스꽝스런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분단고착」을 구실로 하는 긴장완화 거부는 이미 동ㆍ서독의 역사적 체험으로 보더라도 세계적인 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다. 김일성 자신도 이러한 현실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음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김일성은 「사회주의체제 고수」를 선언하면서도 수출과,국제적인 경제ㆍ기술협력에 언급하고 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정치ㆍ사회적으로 김일성주의체제의 동요를 막으면서 경제적인 창문을 어느 정도 열어보자는 데에 있을 것이다. 김일성이 이런 줄타기놀음을 어느 정도로 시도하고,또 어느 만큼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는 앞으로 두고볼 일이다.
대외적인 경제협력의 물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먼저 우리측과의 사이에 진전이 있어야만 뚫릴 것이다. 그런 뜻에서 최근 일방적인 파기선언을 했던 금강산개발계획에 대해 북측이 앞으로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주목된다.
한쪽에서는 새로 통일정책심의위원장으로 윤기복이 등장하고,온건개혁파로 짐작되는 관료들의 서열변동을 주목하고 있다. 어쨌든 김일성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은 폭은 뻔하다. 그 한계는 안으로 통제를 강화하면서 밖으로 경제협력의 명분을 빌려 전술적인 미소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한 전술적 변화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그것이 앞으로 주목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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