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민사이에 감정의 문제로까지 발전됐던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일왕의 사죄문제는 「통석의 염」이란 낯선 낱말의 출현으로 매듭지어졌다. 아키히토(명인) 일왕은 24일 노태우대통령을 맞은 만찬석상에서 일본에 의해 초래된 귀국민의 고통에 통석의 염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간 양국간의 이 문제에 관한 「줄다리기의 결과」를 우리앞에 내보였다.보기에 따라서는 지난 84년 히로히토 전왕의 그것보다는 구체적인 면이 있고 한국민의 감정에 신경을 쓰려 했다는 흔적은 분명 있다. 하지만 통석이란 애매한 수사를 대하면서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한계성과 우리 국민이 기대하던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는 미흡함이다.
「통석」이란 말은 우리말로는 몹시 애석하다는 뜻이며,일본말로는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말로서 우리 외무부가 해석하고 있는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서 「통석의 염」을 갖는다고 말한 것은 「유감」이상의 반성의 뜻은 들어 있을지 모르지만 사과나 사죄의 의미가 전혀 없다는 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일본정부를 대표하는 가이후(해부준수) 총리가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셨는 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드린다』고 또렷하게 사과한 것을 결코 소홀히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런것처럼 일본도 두나라가 더이상 「과거」에 묶여 미래를 개척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믿고 싶다.
우리가 이처럼 이문제에 국민적인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일왕의 사과발언의 말꼬리를 잡아흔들거나,과거의 한을 풀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맺혔던 과거를 청산하고 격변하는 국제정세에 발맞춰 동반자로서 우호협력을 다져나가기 위한 미래지향적인 과제가 두 나라 앞에 놓인 시급한 일임도 그간 여러번 강조한 바 있다. 우리가 일왕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고 당장 무슨 반대급부가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의명분에 서서 일왕의 사과를 줄곧 요구했던 것은 잘못된 과거역사에 대해 반성과 사과가 한일간의 신뢰의 초석이 되며 이것 없이는 협력이란 그야말로 수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민을 아내로 맞이한 아키히토 일왕과 직접선거로 뽑힌 노태우대통령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이번 기회를 한ㆍ일 두 민족의 화해의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아키히토 일왕의 「통석의 염」이란 표현과 가이후 총리의 발언에 대해 우리정부는 일본의 분명한 사죄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이젠 일본이 할 일은 매우 애매하고 상징적인 이 말들을 행동으로 구체화시키는 일이다.
일본이 진정으로 통석한 마음으로 일제강점시대를 반성하고 사죄한다면 그것은 재일동포의 법적지위,원폭피해자의 보상문제,두 나라의 잘못된 과거역사의 바로잡기등 여러 부문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국내의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방일길에 오른 노대통령의 걸음이 결코 헛되길 원하지 않는다. 두 나라관계가 더이상 뒷걸음질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이 한일관계의 전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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