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석」이란 말이 장안의 화제다. 일본측이 고심끝에 찾아내고 우리정부가 흡족하게 수용했던 이 단어가 일반 국민사이에 유행어가 되고 있다.아키히토 일왕이 24일 대한사과의 표시로 밝힌 「통석의 념」은 그만큼 우리국민의 가슴에 진솔하게 와닿지 않고 오히려 절묘한 외교적 수사법정도로만 느껴지는 것이다.
「통석」은 우리에게는 물론 일본에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사어이다. 부지런히 사전을 뒤져야만 그 뜻을 어렴풋이 알수 있는 표현이다. 일본측이 구어체의 사과문안에 굳이 이 어려운 말을 포함시킨 의도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애매한 표현으로 한일 양측을 모두 만족시키자는 발상이었을 것이다.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뜻으로 「통석」을 풀이한 우리 정부는 어찌보면 일본측의 이러한 「기교」에 말려든 셈이 된다. 최호중외무장관은 지난 23일 야나기ㆍ겐이치(유건일) 주한일본대사로부터 일왕 사과문안을 전달받고는 통석의 의미를 재삼 확인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야나기대사는 『문자그대로 마음아프게 뉘우친다고 해석해도 되겠느냐』는 최장관의 질문에 비공식적으로 『그렇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경로의 양국간 접촉에선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상호양해했다는 것이 정부측의 주장이다.
노태우대통령을 공식수행중인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이 배경아래서 통석을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뜻으로 해석,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로서는 일본으로부터 조금이라도 강도높은 사과를 얻어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욱이 우여곡절끝에 정치적 부담을 안고 강행한 방일임을 고려할 때 이같은 욕심은 수긍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의 「대단히 유감」과 외교적 해석인 「뼈저리게 뉘우침」사이의 명백한 괴리를 어물쩍 지나치려 했다면 그야말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며 관심을 끌어왔던 부분은 일본의 진실한 사죄였지 우리정부의 외교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왕의 사과는 분명히 84년보다 강도높은 수준이었으며 공식적인 한일양국관계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도 사과의 말 한마디에 인색한 일본이란 나라의 속마음을 한국민들에게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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