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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대폭인사 권력변화 관심(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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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대폭인사 권력변화 관심(세계의 창)

입력
1990.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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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위등 친등파 원로 대거퇴진/양상곤ㆍ백빙 형제 군부실세 부상/노선갈등 「뇌봉학습」 싸고 표출… 등 의도 주목중국군부내에 대대적인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5월들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야전군사령부격인 7대 군구와 인민해방군 중앙지휘부인 3개 총부의 지휘관 및 주요 간부들을 주대상으로한 이번 인사는 지난 85년5월 인사이후 만 5년만에 실시되는 것이다. 이번 군인사는 최고실권자 등소평이 지난해 11월 13기 5중전회와 올 4월 전인대를 통해 강택민총서기에게 당중앙군사위주석직과 국가중앙군사위주석직을 물려준 이후의 후속조치로 6ㆍ4천안문사태진압에 대한 논공행상의 성격과 「연경화(세대교체)」의 구체적 실천으로 분석된다.

또한 6ㆍ4사태 1주년과 북경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군부의 충성심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번 인사에는 양상곤국가주석과 그의 동생인 양백빙 당중앙군사위비서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홍콩관측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10일 현재까지 확인된 인사내용을 보면 우선 7대 군구중 3대 군구의 사령관이 교체 및 전보됐다. 제남군구사령관에는 광주군구사령관인 장만년중장(62)이 전보되고,광주군구와 성도군구사령관으로는 심양군구 부사령관이었던 주돈법중장(63)과 장태항중장(59)이 승진발령 됐다.

이밖에 새로 임명된 7대군구 주요 지휘관으로는 광주군구부사령관 이희림(전광주군구참모장),광주군구부정치위원 고천정(광주군구 정치부부주임),성도군구정치위원 길선경(전광주군구부정치위원)등이다. 한편 성도군구사령관직에서 물러난 전전유중장(60)은 티베트에서의 계엄을 효과적으로 실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앙의 요직으로 영전됐다고 홍콩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경외교소식통들은 양씨형제의 군부내 최대라이벌로 인식돼온 진기위국방부장(76)과 반양파일원인 홍학지 당중앙군사위 부서기장(77)이 이번 인사에서 퇴진할 것으로 전망한다.

후임국방부장으로는 향수지 남경군구사령관(73)이 옮겨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은퇴가 예상되는 군지도자들로는 곽림상(76ㆍ총정치부 부주임) 우태충(72ㆍ당중앙군사위 규율검사위 제2서기) 왕성한(73ㆍ군사과학위정치위원) 이요문(72ㆍ해군사령부정치위원) 이덕생(74ㆍ국방대학 정치위원)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모두 70살이 넘은 고령의 상장(3성장군)급 이상 군원로로 세대교체의 명분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같은 70대인 국방대학 총장 장진(76)당중앙군사위부주석 유화청(74)등은 현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북경외교소식통들은 예상하고 있다.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지호전(61) 총후근부장 조남기(64ㆍ조선족)도 변동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군인사를 두고 중국관측통들은 최고실권자 등소평의 제2야전군계가 대거퇴진이 불가피한 점을 들어 등의 군내기반의 붕괴 및 「양가군」의 군부장악으로 평가하려 한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양상곤이 등소평을 「무력화」시키고 최고실권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들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설득력이 아주 없지는 않다. 등소평의 심복인 진기위와 대표적인 반양파로 실각한 조자양총서기와 가까웠던 홍학지가 동시 퇴진한다면 이는 군부내에서 양상곤의 권위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이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등의 계열인 장만년이 군구사령관직을 유지했지만 승진아닌 수평이동이고,항일전 당시 등의 전우였던 향수지가 병력을 지휘하던 군구사령관에서 국방부장으로 옮겨간다해도 지금과 같은 미묘한 상황에서는 「승진」이라고 보기힘들다.

곽림상 우태충 이덕생 등 퇴진이 거론되는 군원로들도 하나같이 등소평과 가까운 인물이다.

이러한 점을 들어 양상곤이 등소평의 최고실권자 자리를 넘보려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우선 등소평이 6ㆍ4천안문사태이후 개최된 13기 5중전회와 7기 전인대 3차회의를 통해 전적으로 그의 인물인 강택민총서기에게 당 및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넘겨줬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지만 총구는 당의 관할하에 있다」는 말이 아직은 중국권력관계를 지배하는 원칙인 이상,양씨형제가 군부의 주도권장악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양상곤 양백빙형제가 이번 군인사에서 자파의 인물로 요직을 채우려하는 근본의도는 등소평이후를 겨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군경험이 전무한 강택민이 스스로 기반을 쌓기전에 야전군과 중앙지휘부를 확고히 장악,등소평이후의 권력투쟁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야심에서 양씨형제는 6ㆍ4사태이후 등소평­강택민으로 이어지는 온건개혁파노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치를 잇달아 취했다. 양상곤자신이 등소평의 뜻을 받들어 1백만명 감군 등 군부개혁조치를 수행한 주역이었지만 6ㆍ4사태이후 보수화 한 것이다.

특히 총정치부주임을 겸하고 있는 양백빙은 모택동시절의 「뇌봉」 학습을 부활,군의 정치화를 꾀하고 있고,90년 국방예산을 전년에 비해 15.2% 증액했다.

「군의 생명은 정치공작에 있다」는 모택동의 지론을 강조하는 「뇌봉학습」의 부활은 집권이후 「전투력의 원천은 선진병기에 있다」며 군의 현대화를 추구해온 등의 노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군사예산증액에 대해 경제개혁추진을 위해 꾸준히 군비삭감을 실천해온 등이 기꺼운 마음으로 동의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배경때문에 양씨형제가 이번 군인사를 자파세력강화의 기회로만 삼으려 한다면 그간 잠재돼왔던 등과 양의 불편한 관계가 표면화 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중국의 관영언론들은 노동생산성을 강조하는 「대경학습」 관계기사를 연일 게재하고 군의 호응이 미온적인 데 대해 비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군의 정치화를 정도이상으로 강조하는 양백빙에 대한 등소평과 강택민의 불쾌감의 표시인 동시에 군부를 장악하려는 양씨형제의 의도에 대한 「경고」로 보아야 한다.

오늘의 중국의 상황은 70년초반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혁을 통해 유소기등 실권파를 몰아낸 직후인 70년대초반 중국의 정치역학관계는 태상황적 존재인 모택동밑에 강청등 4인방의 문혁파세력,임표의 군부세력,주은래 등 실용주의 그룹 등 3개파벌로 나뉘어져 있었다. 오늘날 태상황적 존재는 물론 등소평이고 시장경제지향의 강택민을 중심으로 한 상해파,중앙통제경제를 선호하는 이붕 등 유소파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그리고 군부세력을 기반으로 한 양상곤세력으로 3분되어 있다.

문혁기간중 임표의 군부세력과 4인방 세력을 끌어들여 유소기일파를 제압한 모택동은 71년 미ㆍ중화해를 계기로 임표와 노선대립을 빚었으며,결국 이 갈등은 임표의 제거로 귀결됐다. 따라서 6ㆍ4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양상곤ㆍ양백빙의 군부세력을 정치에 끌어들인 등소평은 양씨형제가 그의 노선과 배치되는 정책을 고집하고 그가 후계자로 삼을 강택민의 기반을 위협하려는 야심을 노골화할 경우에는 모택동이 임표를 제거했듯이 양씨형제 제거에 나설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하게 정국안정을 기하지 못하고 있고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등소평은 이번 군인사에서 적정선에서 양보하는 타협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이번 군인사는 양의 야심이 확인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이 끝난이후 등소평은 군부세력제거의 「칼」을 뽑아들 가능성은 높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군인사에 양파의 득세가 현저하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양상곤ㆍ양백빙이 권력의 정상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묘혈」을 앞당기는 신호로 풀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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