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력공백우려 “서행”/유럽통합 가속 불붙여/경제난극심,욕구분출 따른 혼돈 불가피알바니아가 이미 표방한 개혁과 개방정책을 뒷받침하는 본격적인 실무작업에 나섰다. 지난달 17일 라미즈ㆍ알리아 인민의회간부회의장(국가원수) 이 문호개방과 체제개혁방침을 선포한데 이어 9일 행정수반인 카딜ㆍ카르카니총리가 구체적인 후속조치로 광범위한 민주화개혁의지를 재확인했고,의회는 개혁관련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써 알바니아는 40여년간 고수해온 스탈린식 강경공산주의 노선에 종지부를 찍고,동서냉전체제의 와해속에서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 신유럽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에 알바니아가 취한 개혁조치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크게는 개인의 인권신장과 중앙집권경제 체제의 완화가 핵심을 이룬다.
해외여행 및 종교활동자유화,반국가사범의 범위축소와 처벌기준완화,여자에 대한 사형제도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인권신장조치는 최근 발표했던 35개국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입의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동안 미국은 알바니아가 CSCE가입요건인 지난 75년의 헬싱키인권협정을 준수하지 않는한 CSCE가입을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따라서 이번 인권신장조치로 알바니아는 CSCE가입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고 유럽집단안보체제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을 튼 셈이다.
또하나의 중요한 측면인 중앙집권경제체제 완화조치는 기업경영에 독자성을 부여하고,특히 외국자본의 도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세계3대 경제권의 하나로 결속된 유럽공동체(EC)의 교역대상국이됨으로써 극심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내부 경제구조의 사전정비 작업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알바니아의 이번 개혁조치는 또 동유럽공산주의 국가들의 개별적인 체제개혁작업이 마무리 돼 가고 있음을 뜻하는 동시에,앞으로 범유럽차원의 안보ㆍ경제통합작업이 가속화 될 것임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고도 볼 수 있다.
유럽국가로는 유일하게 CSCE의 비회원국으로 남아 있던 알바니아가 빠르게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바르샤바조약기구나 나토가 아닌 CSCE가입을 희망한 것부터가 유럽통합이 성큼 다가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CSCE가 아직까지는 유럽의 평화를 보장할 만한 조직과 실질적인 구속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지만,알바니아가 가입할 경우,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전유럽국가가 참여한 기구로 구색을 갖추기 때문이다.
한편 알바니아가 하비에르ㆍ페레스ㆍ데ㆍ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의 방문을 이틀 앞두고 개혁조치를 단행한 것은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선전효과를 노렸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케야르총장의 방문에 맞춘 인권신장조치 발표는 40여년간 누적된 알바니아의 부정적 이미지 개선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국제여론의 지지와 승인은 알바니아 내부에 잠재해 있는 보수세력의 반발을 견제하고 개혁노선을 기정사실화 하는 작용을 할 것이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알바니아의 개혁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돼 왔고,개혁의 분위기 또한 무르익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알바니아지도부가 거듭 「위로부터의 개혁」 입장과 「진정한 사회주의체제」 유지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서방의 정치ㆍ경제관측통들은 알바니아지도부가 이처럼 신중한 개혁노선을 표방한 것은 내부저항보다는 급격한 변혁으로 인한 지도력공백을 염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알바니아 내부의 보수세력은 알리아간부회 의장과 카르카니총리 등 실용주의 개혁파노선에 제동을 걸만큼 힘이 강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0여년간 알바니아의 국부로 추앙받아온 호자의 미망인 엔버ㆍ호자를 축으로 강경론자들이 6년간 변동없이 당정치국에 포진하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실권을 상실한 상태로 보인다.
반면 85년 호자의 뒤를 이어 집권,초기에는 주로 대외정책만을 맡았던 알리아간부회 의장이 이후 개혁성향의 전문인력을 당과 정부요직에 두루 기용하며 기반을 다진끝에 지금은 대내업무전반을 장악한 것으로 관측된다. 알리아의장은 85년이후 미소강대국 및 유고ㆍ그리스 등 인접국들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한편,금기시돼온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 등 외국기업의 진출도 부분적으로 허용,의도적으로 개혁의 여건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결과 현재 알바니아 내부에는 고립폐쇄정책의 기반이 됐던 일반국민들의 반외세ㆍ반자본주의 감정이 사라지고 오히려 감당키 어려울 만큼 물질적인 욕구가 고조돼 있다고 알바니아를 방문했던 서방의 기업인들은 전한다. 예컨대 얼마전까지 외국으로 이민간 알바니아인들이 고국의 가족들에게 달러를 송금하면 「오염된 자본주의」 화폐라며 압수,반송했으나 지금은 주요 도시 곳곳에 달러교환소가 설치돼 있다.
또 냉장고 TV 등은 물론 카셋 외국음반 등 문화용품의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탈리아 그리스 유고 등 이웃나라의 방송을 즐겨 듣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 진다.
따라서 알바니아지도부의 현실적인 고민은 개혁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개혁과 개방후 폭발적으로 분출할 일반국민들의 욕구를 다스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일인당 국민소득 9백달러이하의 극빈국인 알바니아경제는 집단농장정책 실패와 3년연속 가뭄,그리고 매년 6만여명꼴의 높은 인구증가율(전체인구 3백만)에 따른 식량부족 등으로 기본적인 물질욕구마저 충족시키기 힘든 형편이다.
결국 「사회주의체제유지」와 「외국의 내정간섭반대」를 정치ㆍ경제적 혼란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로 삼아 개혁ㆍ개방작업에 돌입한 알바니아도 정상궤도 진입을 위해서는 이웃 동구국가들이 겪고 있는 혼돈과 시행착오를 한번쯤,오히려 그이상으로 겪어야 할 것 같다.【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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