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을 탄적도 있는 미국의 저명 언론인이 쓴 칼럼을 며칠전에 읽은 생각이 불현듯 떠 오른다. 그 필자는 40년전 자신이 초년생 기자로 겪은 경험을 통해 일상적인 한가지 일을 쫓다 두가지의 엄청한 특종을 동시에 놓쳤던 쓰라림을 생생히 토로했던 것이다.어느날 마감시간에 쫓겨 기사 작성에 열중하고 있었던 그 기자는 황급히 문을 두드리며 바로 아래층에서 백주에 큰 사건이 났다고 알리려는 여직원을 『마감시간을 도대체 뭘로 아느냐』고 역정을 내며 쫓아버렸다. 하지만 기사작성을 끝내고 보석상가들이 들어서 있던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 기자는 경찰과 기자들이 붐비는 것을 보고 아연해 한다. 이미 현장취재와 송고를 끝낸 경쟁실 기자가 늦게 모습을 나타낸 그 기자에게 『당신은 바로 위층에 있었으면서도 경쟁지를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올들어 최대의 백주보석 강탈사건 특종을 그냥 놓쳤단 말이냐』고 핀잔을 줬던 것이다.
그만 뒷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 했던 그 기자는 경찰과 다른 기자들이 떠난 뒤에도 넋나간 듯 현장의 계단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때마침 보석상을 나선 넓은 챙의 모자를 눌러쓴 한 귀부인이 그 기자의 멍한 모습이 보기에 딱한 듯 일부러 다가와 『괜찮으냐』고 물었다. 자포자기의 몸짓만 할뿐 대답이 없는 그 기자에게 그 귀부인은 이번엔 안경마저 벗고 『도와줄 일이 없겠느냐』고 친절히 물었다. 하지만 그 기자는 40을 갓넘은 기막힌 미모의 귀부인에게 『제발 혼자있게 해달라』고 짜증을 냈고,그 부인도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헐레벌떡 보석상의 지배인이 달려나왔다. 『그 귀부인이 누구인줄 아느냐. 바로 은막의 여신 그레타ㆍ가르보야. 나는 그런분을 고객으로 모시는 한 강도사건 쯤이야 상관않겠다』고 자랑삼아 말했던 것이다.
전세계의 기자들이 인터뷰를 못해 몸살을 앓는 그레타ㆍ가르보인데 제발로 굴러들어온 천재일우의 기회마저 놓쳐버린 그 기자는 머리에 또 한번 해머를 맞은 듯 했었다고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운명의 장난이 야릇하고 예측할 수 없음을 조금씩은 실감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절대절명의 마감시간이라지만 그 마감시간이 시시각각 일어나는 사건이나 세상사의 부침을 중단시킬 수는 결코 없는 것인데도 그 이치를 곧잘 잊는다. 흔히 한마리 다람쥐를 쫓느라 두마리 토끼를 놓치는 어리석음은 그래서 일어나는 것인 모양이다.
사실 정치권으로서는 차기정권의 향방이 결정되는 92년이야 말로 절대절명의 마감시간인 셈이다. 모두가 그 시점을 향해 무리한 수순도 불사하며 3당 통합도 했고 야권통합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닥치지도 않은 그 마감시간에 앞질러 넋빠져 있는동안 국민들을 위한 신선한 특종들은 물건너 갔고,슬며시 안방을 차지한건 「총체적난국」이 아니었던가.
평소 특종도 못하면서 마감시간만을 꼽다가는 인기얻기는 애시당초 틀린일임을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깨우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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