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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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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 일인들에 의해 민비가 시해된 을미사변직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 순종이 왕궁인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을 떠나 서울 정동에 있는 러시아공사관(아관)으로 옮겨 거처한 사건. 1896년 2월부터 1년여동안에 있었던 일이다. ◆중학교3년용 국사교과서에서 부터 나오는 이 아관파천은 당시 열강들의 세력다툼속에서 구한말 이 나라의 위상이 어떠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의 한토막. 지금 그 역사의 현장에는 러시아인 「사바탄」이설계,1890년에 건축했다는 르네상스식 3층 모양의 탑형건축물만이 남아있을뿐,고종과 왕세자가 기거했던 러시아공사관의 전체모습은 찾을 길이없다. 세월에 따라 마모되게 마련인 역사현장의 한 단면 이라고나 해야할는지­. ◆어쨌거나 지금 탑형건물과 주위 1천5백여평은 지난 77년11월 사적 253호로 지정되어 서울시가 사적공원으로 조성,관리하고 있다. 원래의 러시아공사관 건물의 전체규모는 알수가 없다. 주변부지가 6천여평이나 됐었다고 하나 70년 8월 대법원 예규 218호에 따라 서울시 재산으로 귀속된후,이중 5분의 3정도는 불하처분되고 1천5백여평 부지만이 공원부지로 보존중이다. ◆그런데 건축한지 꼭 1백년이되고, 노일전쟁패배와 일제의 한국침탈 그리고 광복등으로 까마득히 잊었던 아관파천의 현장인 제정러시아 공사관이 한소 수교가 본격화하면서 소유권시비의 대상이 될 소지가 있다고하니 역사의 야릇함을 새삼 되새기지 않을 수가 없다. 국내법상으로 우리는 하등의 하자가 없다고 하지만 「국제법이 국내법을 우선한다」는 이론에 따라서는 소련의 소유권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론적 근거는 「선임국에 귀속된 재산은 자연승계국이 상속한다」는 「빈협약」에 따른 것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도 6ㆍ25전쟁을 뒤에서 조종,3백만명의 동족살상을 야기한 대가와 KAL007기 격추로 인한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도 당연히 주장해서 받을 것은 받고 줄것은 주는 떳떳한 외교자세 정립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당국에 촉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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