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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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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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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세로 19줄로 짜인 조그마한 바둑판에도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 중국출신의 기사 오청원은 그것을 조화로 설명한다. 『바둑은 조화이다. 흑과 백의 조화,세력과 실리의 조화,투쟁과 타협의 조화,상대와 나의 조화,그리고 나와 내 마음의 조화이다』 이만한 경지에 들어야 달인이라는 말을 들을만 하게 된다. ◆조화가 없거나 깨지면 바둑판은 애초에 성립이 되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흑돌과 백돌을 던지면 난장판이지 바둑은 아니다. 세력이 넓으면 실리로 파고 들어야 균형을 이룬다. 바둑이 보여주는 철학의 오묘함은 투쟁과 타협의 조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먹고 먹히는 생사의 공방이 치열하다가도 세와 이의 타협으로 조화를 만들어 내는 조화가 곧 바둑의 철학이 아닐까. 이런 가운데 마음의 평정을 얻고 승부를 초월한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 ◆노사분규등 격렬한 대립관계에 조화의 철학은 통용될 수 없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상대를 서로 깍듯이 대하는 것부터 배울 만하다. 이것을 흑백의 조화라고 하자. 자기 주장의 관철을 위해서 세력과 이익의 다툼이 있을 만하고 또 있어 괜찮다. 여기서 과정이 중요하다. 그것이 곧 투쟁과 타협의 조화가 아닐까. 투쟁정신만큼 타협정신도 존중되어야 조화가 이뤄진다. 타협은 자기와의 싸움이고 자신을 이겨내는 길이다. ◆KBS의 파행은 한달이 가까워 온다. 투쟁과 타협의 조화가 실현될 때가 무르익은 것 같다. 제작거부는 계속되지만 정상출근이 시작되었고 노조간부등이 무조건 방송정상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숨통을 열어 놓았다. 조화의 철학으로 사태의 극적인 반전을 한번 기대해 보고싶다. ◆정부와 경영측도 조화의 기운을 살려 명수를 하나 던져 보기 바란다. 그동안 몇가지 강수를 쓴 결과가 어땠나 차근차근 돌아보고 자기를 이기고 넘어서는 아픔을 스스로 맛보면 해결의 서광은 비칠 것이다. 투쟁과 타협의 철학이 조화의 기적을 일으킨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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