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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과 성,애국심(조두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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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과 성,애국심(조두흠칼럼)

입력
1990.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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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재치있는 조어능력은 알아주어야 한다.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분야가 어려운 현실을 「총체적 난국」이라고 규정한 것도 그럴듯하다. 지금의 시국을 위기가 아닌 난국으로 표현해서 모든일이 잘 풀린다면이야 얼마나 다행이랴.노태우대통령은 연휴가 끝난 7일 시국에 관한 대국민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지난주 생산현장 등을 돌아보고 밤늦게 경제장관회의까지 소집시킨 대통령이 난국을 통감해서 직접 나선 것 같다. 요즈음 많은 국민들은 『이 나라는 어디로 가는거냐』면서 몹시 불안해 하는 가운데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고 비아냥을 받던 6공정부가 이제 정말로 정신을 차린것인가.

어느시대 어디서나 통치권자에게 국정전반의 책임이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하나 대통령 스스로가 모든 현안을 하나하나 풀어갈 수야 없다. 그래서 정부안에 총리ㆍ부총리가 있고 각부장관 그리고 전문직 공무원들이 보필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난국원인도 따지고 보면 3공이래 답습해온 인사정책의 무정견에서 연유됐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예로부터 정치의 요체는 인사에 있다고 했다. 「좋은 인사」란 대다수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인사다. 집권자가 아무리 자의적인 인사를 않겠다고 작심한들 객관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인사가 실제로 있었다.

국민은 5ㆍ16군사혁명이후 군출신의 행정ㆍ입법부 요직등용,그리고 낙하산식 산하기업체장임용을 숱하게 지켜보았다. 하긴 누가 어떤 자리에 앉아도 부하 직원들이 참모노릇을 제대로 해주면 무사안일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열과 성과 애국심만 가지면 어떤 직책도 담당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있는지 모른다. 거기에 전문성ㆍ일관성은 우습게 경시된다.

하지만 이세상 모든일에 전문성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얼마전 바둑의 이창호4단이 일본의 최강기사 다케미야(무궁정수)9단에게 낙승,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4세의 전문기사인 그가 단1분도 안걸려 꿰뚫어보는 수가 있다고 치자. 9ㆍ10급짜리 아마추어가 아무리 우국충정과 정성을 들여 하루종일 노력해 보아도 그런수가 보일리가 없다.

기재와 세재는 다르기때문에 이 4단이 다른 세상일을 바둑수순처럼 풀수없기는 마찬가지다. 가령 군사작전에서 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격파하는 군인,학생들에게 학문이론을 정확히 깨우쳐주는 대학교수,기사를 객관적으로 잘 쓰고 논평하는 신문기자가 정부요직이나 국회의원직에 꼭 적합한 것인지,의문이다.

지난 3공때 공병장교출신이 시장,부관출신이 국세청장,포병장교가 문교장관에 임명된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는 인사였다. 그런가하면 어떤 경제장관직은 으레 대학교수가 맡아야 하고 문공장관만은 신문기자 출신에게 배정하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했다.

본디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공직에 기용되면 노력과 정성으로 이를 커버하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정책수립과 시행과정을 통해 과격해지게 마련이다.

또한가지 정부요직,입법부의원으로 기용된 외부인사는 적어도 그분야에서 공직을 일단 마치는게 순리다. 정부안에서 승진할 때까지 승진한뒤 사임하거나 국회의원이 공천ㆍ선거과정에서 떨어지면 야인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우리정부의 관대한 인사정책은 공직에서 그만두면 어떻게 해서든지 산하기관ㆍ업체에 다시 보내어 노후를 보장해 주려고 한다.

5공때 실례도 어제의 청와대 대변인ㆍ문공장관이 오늘의 산하신문사 사장이 되고,오늘의 방송사 사장이 다음날 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한다. 서로 뒤죽박죽,「크로스인사」를 서슴지 않는게 인사의 난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리를 맞바꾸는 것 이상으로 나쁜 선례는 정부나 국회ㆍ여당전문위원을 거쳐오면 본래 자기직장을 외길로 알고 살아온 동료들 보다 몇단계를 앞지른다는 이야기다. 바이패스(지름길)로 금의환향하는 사람은 좋을지 모르겠으나 본업의 종사자들은 견딜 수 없는 좌절감을 가질게 분명하다. 뿐만아니라 언제부터인지 우리사회에서는 대통령과 같은 지방출신들은 해임된 뒤에도 불사조처럼 다른 요직에 재기용된다. 개각이나 정부인사때마다 『그 사람이 그사람』이라고 신선미가 없다는 신문논평이 나올법도 하다.

중국의 이언은 물용의인,물의용인 (사람이 의심나면 쓰지 말 것이요,사람을 쓰는 이상 의심하지 말라)이라고 했다. 인사를 둘러싼 인정의 기미를 알 것만 같다.

지난 「3ㆍ17개각」 전 조순경제팀의 무지와 지나친 개혁추진으로 우리 경제가 금방 망가지는 것처럼 떠든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대기업임원ㆍ여당의원 여기에 일부 신문까지 가세해서 이를 비난,매도하지 않았던가.

물론 모든 개혁에는 그 방법ㆍ시기가 적절히 뒤따라야 한다. 혹시 거기에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개선하도록 권유하고 차분히 지켜볼 수도 있었다. 결국 일도양단식으로 경제팀을 몽땅 경질했더니 다가온 것이 겨우 「총체적난국」이란 말인가.

정책추진에 있어 전문성이외에 일관성이 결여된 탓이 아닌가 싶기만 하다.

인사잘하기로 정평나 있는 어느 선진국 민간기업은 지식,혁신능력,조직화능력,의욕ㆍ태도ㆍ실적의 다섯가지 평가항목을 정하고 젊은 사원에게는 실적을,포스트가 오를수록 혁신노력을 중시한다고 들었다.

우리사회도 이제 열과 성과 애국심 만으로 국정을 처리할 단계는 지난것 같다. 공직사회에서 전문성ㆍ일관성의 제고가 무엇보다도 긴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특정계층ㆍ특정지역에 치우치지 않은 공명정대한 인사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총체적 난국」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착안대국,착수소국」의 경륜이 아쉽기만 하다.【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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