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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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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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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사태에 난데 없이 뛰어들었던 김용갑 전총무처 장관의 밀사설이 꼬리를 끌고 있다. KBS비상대책위원회는 4일 아침 발표문을 통해 김씨가 「청와대측 밀사를 자처」했다면서 그의 출현은 「공작정치의 한 표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김씨는 거듭 그의 중재노력은 어디까지나 개인자격으로 한 것이라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KBS사태가 혼미한 것처럼 김씨 밀사설 또한 종잡을 수가 없다.어떻게 보면 김씨의 출현과 그를 맞은 KBS비대위의 대응,그뒤에 벌어진 일들은 해프닝과도 같다. 그런 것을 굳이 거론할 것은 없겠으나 그 과정의 한 대목은 못내 마음에 걸린다. 김씨가 그의 등장 동기를 설명하면서,오늘의 이른바 「총체적 난국」을 「87년6월의 상황」에 비유한 것이다. 그의 위기의식은 이해할 수가 있으나,그때와 지금이 과연 같은 상황일까.

「87년6월」은 그달 10일,19일,29일의 3막으로 구성된다. 10일 민정당의 노태우대통령후보 지명과 「6ㆍ10항쟁」,18∼19일 사이에 있은 정부의 군출동 준비와 이의 철회,29일의 6ㆍ29선언 등이다.

이 무렵 김씨는 청와대의 민정수석비서관이다. 시위상황과 민심동향을 챙겨 보고하는 직분이다. 그는 6월18일에 이르러 『민심은 완전히 떠났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상인들마저 시위에 가담하는 사태를 보고 판단한 것이다. 『군을 동원하면 시민들이 탱크위에 올라갈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역발상의 해결방법』을 건의했었다고 그는 술회하기도 했다 (「월간조선」 89년12월호). 그에게는 그때 군출동을 막아 파국을 회피케했다는 감회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감회를 빼고 생각할때,지금을 「87년6월」과 비유하는 것은 아무래도 단락적이다.

그가 말하는 87년의 새해 첫날 한국일보의 신정특집은 『중산층,역사의 전면에 나서라』는 통단제목을 두르고 있다. 한국일보와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가 함께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결과를 정리한 내용이다. 조사결과를 분석한 서울대팀은 「한가지 중요한 발견」을 보고하고 있다. 『중산층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오늘의 현실을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다』는 사실이다.

이 조사결과의 의미는 안정 세력으로 생각되어 온 계층이 비판ㆍ저항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처음 밝힌데 있다. 이들이 전면에 나설때 대변혁이 있으리란 예고나 다름이 없다. 「87년6월」은 대체로 이 예고대로 전개가 된다. 안정세력을 오판한 정부의 4ㆍ13조치가 있었고,여기서 유발된 「6월항쟁」의 향방은 넥타이차림의 직장인ㆍ상인마저 시위에 동참하는 상황에 이르러 결판이 났다.

그러면 87년에 부각이 됐던 계층­이름이야 중산층이든 중간층이든 간에­은 지금의 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음 두 수자가 퍽 시사적이다.

하나는 민자당 자체조사로 밝혀진 정당별 지지도 (한국일보 4월28일자)이다. 4월15일 현재 그 수자가 민자 14%,평민 18.8%,민주(가칭)23.8%로 나타난 것이다. 민자당만 떼어 놓고 보면 지난 1월 3당통합 직후 43%이던 지지도가 2월에 36%,3월의 28%로 떨어지고 있다. 이 수자는 작년9월 한국갤럽연이 조사한 정당별 지지도(민정 19.8,평민 18.5,민주 17.7,공화 9.2%)와도 대비가 된다. 4당중 통합3당의 지지도합계가 46.7%인 것이다.

여기 나타난 43%와 46.7%란 수자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음직해 보인다. 가설적이긴 하지만 앞에 본 정당별 지지도의 추이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민주ㆍ공화 등 온건야당을 지지한 사람들은 일단 안정세력으로 볼 수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3당통합을 통한 정치안정을 일단 수긍했으나,지금은 그들을 포함한 더 많은 사람이 통합신당에 실망하고 있다. 안정세력이 부동하는 꼴이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87년6월」에서 처럼 저항세력화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지난 1일 서울지하철노조가 벌인 무임승차투쟁에 대한 시민들의 대응이다. 승객의 겨우 2.7%만이 무임승차였다는 집계가 나온 것이다. 작년 봄 지하철노사분규 때의 무임승차 80∼90%에 이른 것과는 달라진 상황이다.

이와 같은 사회심리적 바탕을 보아도 「87년6월」과 오늘의 「총체적 난국」이 처한 상황은 다르다. 「87년6월」이 막다른 골목이었다면 오늘의 난국은 하나의 고비다. 난국=위기라는 뜻의 영어 크라이시스 (crisis)도 원래 말뜻은 고비ㆍ전환점이다. 이렇게 본다면 「87년6월」은 크라이시스가 아니라 에머전시(emergency=비상사태)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른만큼 대응도 달라야 옳다.

「87년6월」이라는 김씨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때문이다. 위기의식이 새로운 위기를 부를 수도 있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결과는 난국에 대처하는 방안이 물리적방어에만 치우쳤을 때에 생길 수가 있다. 그것은 섣부른 정권보신주의로 비쳐 지금보다 더한 공권력의 평가절하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있어야 할 것은 물리적방어가 아닌 심리적공세이다. 먼저 국민을 안심시키고 그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미소가 아니라 결의에 찬 모습을 보고 안심한다. 국민적 희망을 담은 청사진의 제시가 있을 때,정부를 신뢰한다. 그래야만 부동화한 사회의 안정세력을 정착시키고,무임승차를 마다한 시민정신을 포섭할 수가 있다. 오늘의 어려움이 결국은 리더십의 문제,무책이 상책같은 정책행태에 연유한 것이라 믿기에 이런 생각은 더욱 간절하다. 「87년6월」과 오늘을 대비하여,한때의 비상대책을 기대하기 보다는,위기란 바로 고비요,전환점이라는 이치를 새기는 슬기로움이 더 아쉬운 것 아닌가 한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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