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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인질석방/뒤늦게 빛보는 미 「침묵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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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인질석방/뒤늦게 빛보는 미 「침묵외교」

입력
1990.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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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반응이 납치를 조장” 기다리기 작전/억류인질 「자산」아닌 「부채」로… 2명 석방/대부 이란ㆍ시리아도 서방원조노려 석방압력【타임 5월7일자ㆍ본지 특약】 최근 레바논억류 미국인인질 2명의 석방을 계기로 부시 미행정부가 취해온 대이란 「침묵외교」가 빛을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수년동안 스위스관리나 제3국외교관 또는 민간인 등 비공식채널을 통해 이란과의 관계개선 의향을 테헤란 측에 전달해 왔다.

다만 미국은 양국관계의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기 위한 협상에는 어떠한 전제조건도 있을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 아직도 레바논에 억류중인 6명의 미국인 인질전원을 무조건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로버트ㆍ폴힐교수(55)가 석방된 이후 인질석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벨라야티 이란 외무장관은 『이제는 서방측이 무언가를 해야할 차례』라고 지적하고 『미국은 이스라엘에 압력을 넣어 이스라엘 감옥에 억류돼 있는 시아파 아랍인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당소속의 하원중동소위의장 리ㆍ해밀턴의원도 미행정부에 「모종의 조치」를 촉구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은 아직 아무런 조치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는 다만 하페즈ㆍ아사드 시리아대통령에게 폴 힐교수의 석방에 공개적 사의를 표하는 한편 자신이 하세미ㆍ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할 준비가 돼 있다는 뉴스를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조치는 시리아나 이란의 입지를 강화시켜 이들이 인질들을 잡고 있는 테러범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부시대통령은 이처럼 인질석방을 위한 「무언의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전임자들보다 침착하게 대처해 왔다. 사실 카터나 레이건행정부 당시에는 언론과 정부가 인질문제에 과민한 반응을 보여 인질 납치를 조장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의 「기다리기 작전」은 인질을 계속 억류하는 것이 결코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데 효과를 본듯하다.

하지만 인질들의 운명은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달려있다기 보다는 이란과 시리아 등 중동국가들의 변화무쌍한 역학관계에 좌우된다.

시아파회교납치범들의 후원자이며 정신적 지도자역을 맡고 있는 이란은 원유가하락,이라크와의 8년전쟁,서방의 제재조치 및 국영기업의 비효율성 등으로 극심한 경제불황에 처해 있다.

라프산자니대통령은 60%의 인플레와 25%에 달하는 실업률을 극복하고 경제재건을 꾀하기 위해 무려 2백70억달러에 달하는 서방차관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79년 회교광신자들이 테헤란주재 미대사관에 난입했을 때 미국으로부터 인출정지 조치를 당한 10억달러의 미국내 동결자산을 되돌려 받는 것도 경제부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라프산자니대통령은 이란이 인질납치범의 「대부」로 인식되는 한 서방의 지원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질범 석방작업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란 의회는 메흐디ㆍ카루비국회의장과 같은 반미과격주의자들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라프산자니대통령의 영향력이 아직까지 그렇게 크진 못하다. 최근 2명의 미국인 인질이 석방됨으로써 라프산자니대통령의 운신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나 그는 아직 과격파와 정면대결 할 입장이 못된다.

인질납치조직의 거점인 레바논에 군대를 진주시키고 있는 시리아도 오랜 기간동안 동맹관계를 유지해 온 소련의 지원이 줄어들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인질범의 장기억류가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소련은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리아에 대해 더이상 지원을 계속하기 힘들다는 태도로 다마스커스정부에 공식통보했다. 서방관측통들은 소련의 무기ㆍ장비지원이 이미 상당부분 감축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사드 시리아대통령이 이번주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지만 국내의 개혁과 개방으로 더이상의 혼란을 원치않는 소련으로부터 큰 「선물」을 얻어내기는 힘들것 같다.

시리아는 또 독가스ㆍ장거리미사일과 함께 핵무기도 보유하려는 이라크와의 불편한 관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랜 기간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시리아의 아사드대통령과 이라크의 후세인대통령은 중동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란과 시리아는 인질납치범들에게 인질을 포기하라고 직접 강요하지는 못하지만 이처럼 각자의 정치ㆍ경제적 필요에 의해 인질석방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헤즈볼라 같은 레바논인질 납치조직은 이란경제문제나 시리아를 지원하는 초강대국이 어느 나라인가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들 인질 납치조직들은 이란이나 시리아에 순종적이긴 하지만 인질 석방의 대가로 체포된 동료의 석방이나 무기 등을 요구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란­콘트라사건의 관련국인 이란은 이번 인질석방을 위해 헤즈볼라에게 탱크와 로켓발사대를 인도했었다.

아무튼 서방 각국은 과거 광신적 반미주의를 촉발시켜 온 중동정치의 역학관계가 이제는 정반대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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