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ㆍ처우 개선」은 부수문제/일,딴전 부리며 교묘한 대응최근 한일양국간의 최대현안으로 등장한 「재일한국인 3세 법적지위문제」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말그대로 지금 막 태어난 3명의 「협정 3세」와 앞으로 태어날 3세들에게 일본에 영주할 자격을 줄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문제가 주제이고,거기에 덧붙여 재일한국인 전체에 대한 법적지위 및 처우문제가 부수적 의제인 것 처럼 인식되고,오도되고 있는 것이다.
3세 영주자격과 이른바 4대 악법제도는 결코 문제의 본질이자 목표가 될 수 없다.
이번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무엇보다도 일본정부가 과거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피해를 보상하는데 있다는 것이 당사자인 재일한국인들의 외침이다. 이는 또 한국인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의 요구이며 그 정당성은 일본지식인들의 제언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이번 문제가 4대 악법철폐를 비롯한 재일한국인 처우개선 문제만으로 부각된 것은 우리측 정부나 언론이 이를 「재일동포 3세 법적 지위문제」로 정형화시켜 표현한데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일본측의 교묘한 대응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재일동포 3세를 포함한 자자손손에 자동적으로 영주권을 부여하고 4대 악법을 철폐해야한다는 우리측 요구사항 하나하나에 일본측이 딴전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문제의 본질인 대한사죄와 보상문제는 실종돼 버린 것이다.
일본측의 사죄와 보상이 선행된다면 재일한국인 법적지위개선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일본땅에서 태어나는 한국인의 후손들에게 영주를 허가하는 것은 선심이 아니라 의무여야 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영주권도 아닌 영주허가를 우선 3세에게만 주고 4.5세는 그때가서 보자는 태도이다. 우리가 흔히 영주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우리 동포들에게 영주권을 준 일이 없고 다만 영주를 허가했을 뿐이다.
65년 한일 협정시 재일동포 1.2세에게 부여된 것은 영주권이 아니라 「영주허가」이다. 그래서 재입국 허가니 강제퇴거니 하는 악법규정이 계속 시끄러운 것이다.
이 문제는 일본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전제되지 않는데서 출발한 것이다. 일본의 잘못으로 일본땅에 거주할 수 밖에 없게 된 역사적인 특수성이 있는데도 허가까지 받아야하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과거의 반성과 청산에 입각한 재일한국인 권리보장을 촉구하고 나선 일본지식인들이 문제해결의 첫걸음으로서 「재일한국인 문제는 한일합병과 식민지 지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일본정부와 사회가 솔직히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측이 4대 악법 철폐나 교육공무원 임용확대,취업문호개방,민족교육 보장등에 대해 「절차개선」 「규제완화」 「제한된 분야에서의 확대」등으로 생색을 내고 있는 것도 본질을 호도하는 처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과거에 대한 사죄의 태도가 있다면 당연히 이뤄져야 할 일을 밀고 당기는 정치협상의 대상으로 몰고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도덕적 무책임성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동독은 23일 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이 저질렀던 유태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새 동독정부는 생존자들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이일을 맡고 있는 이스라엘의 관계재단에 6백20만 서독마르크(3백65만달러)를 지불하며,동독에 설립되고 있는 이 재단의 지점에도 10만 서독마르크 (5만9천달러)를 따로 지급한다는 것이다. 동독의 보상금 지급에 앞서 서독은 전후 「독일을 대표하여」 이스라엘 국가보상,개인보상,기업보상을 합해 총8백억 마르크(4백70억달러)를 지급하고 기회있을 때마다 사과를 되풀이 해 왔다. 그런데도 신생 동독정부가 「모든 독일국민들이 유태인학살에 대한 도덕적 연대책임을 받아들여 이스라엘과 전세계 유태인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표명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와 양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소련 역시 얼마전 2차대전 당시 저지른 카틴숲 폴란드장병 대량학살 사건을 시인하고 폴란드에 사과했다.
이웃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도 사과한마디 없이 버티고 있는 나라가 일본 말고 또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들추어서 비난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정한 선린우호관계를 다짐하자면 불행했던 과거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또 다시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몇가지 요구사항에서 일본측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해서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된다. 어쩌면 일본측이 노리는게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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