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협등 실리도 큰데”고민거듭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이 재일동포 법적지위문제로 뜻밖의 암초에 부딪치게 되자 방일을 준비해오던 주무부처인 외무부는 곤혹스런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일관계의 특수성과 미묘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외무부는 그동안 조심스럽게 노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해왔으나 예정일자를 한달도 채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방일자체가 불투명해지는 위기에 몰리자 사태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입장이다.
지난해말까지만해도 외무부는 재일동포 3세이하 후손의 법적지위문제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미미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재일동포 3세이하의 법적지위문제 협상시한이 91년 1월16일로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협상교섭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국내여론이 전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월초 외무부의 청와대 업무보고때 노대통령이 밝힌 『재일동포 법적지위,원폭피해자,첨단과학기술협력등 한일간 현안이 매듭지어지는 계기가 되지않는다면 방일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 알려지면서부터 국민의 관심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측으로부터 재일동포 문제에 대한 만족할만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자 재일동포를 비롯,국내의 여론은 일본의 무성의를 강도높게 비난하는 방향으로 기울었고 결국 노대통령 방일반대를 주장하는 선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대통령 방일을 준비해온 외무부는 노대통령의 방일을 감정적인 측면에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한일관계는 과거 36년간의 불행한 역사에 기인한 감정적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국제정치ㆍ경제ㆍ안보ㆍ문화등에서 불가분의 상호의존적 측면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재일동포 문제를 방일과 직접연계해 곧바로 취소 또는 연기를 거론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한일관계에 있어 과거사를 먼저 깨끗이 청산한 뒤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밝히면서도 『그러나 아ㆍ태 지역의 역할이 커지고 주한미군감축등 안보환경이 변화하는 현시점에서 한일간의 긴밀한 협력관계 또한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5공청산이 칼로 자르듯 완벽히 처리하기 힘들었듯 한일간 과거사청산도 협력관계를 유지시켜가면서 풀어가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과 관련,우리 측은 재일동포 법적지위 문제외에도 산업기술,과학기술,통상분야에 있어서 7∼8건의 중점협력사업을 제시해 놓고 있다.
특히 산업기술협력 분야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한 기술진의 일본연수문제등을 집중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산업기술인력육성사업에 대해 일본측은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기초과학,신소재,원자력등의 협력사업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외무부는 노대통령의 방일이 이처럼 재일동포 문제등 과거사청산과 과학기술협력문제등 향후 양국관계의 긴밀화라는 두가지 측면의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외무부는 그러나 노대통령의 방일이 재일동포 법적지위문제로 집약된 현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차피 외교가 내치의 연장인만큼 노대통령이 방일을 마친 후 「성과는 없고 국민적 자존심만 잃었다」는 비판여론에 몰릴 경우 정상외교의 효과는 반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무부는 일본측에 이러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며 재일동포 문제해결을 강력히 촉구하는데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오는 30일 열릴 예정인 한일외상회담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는 외무부는 『어느정도 서광이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측이 그동안 완강히 거부하던 지문날인철폐등에 대해 대안제시를 시사하는등 태도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 방일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최종방침은 30일의 외무장관회담직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상회담에서 드러날 일본측의 입장이 우리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노대통령 방일문제는 한일 관계의 특수성과 여론의 풍향등으로 인해 점차 민족적 자존심과 현실적 국가이익,외교와 국내정치 등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게 뒤얽히는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는 것이 외무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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