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동포들은 조국한국을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었다. 교포 3세,4세들까지 모두 조국을 가보고 싶어 했고 조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했다.지난 6일 저녁 6시30분께 레닌그라드 거주 한인들의 모임인 레닌그라드 고려문화센터의 초청을 받고 동료기자들과 함께 바실리프스키 오스트로브가의 키로궁전 5층에 있는 고려문화센터를 찾았다. 15평 남짓한 사무실엔 레닌그라드 한인들의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50여명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옛 러시아의 수도였던 레닌그라드에는 한인 2천8백여명이 살고있다. 그들은 타슈겐트의 한인들처럼 대부분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했다.
인사말을 해달라는 요청에 일어나 한동안 「즉흥연설조」의 인사말을 해야했다.
『한민족 여러분,만나서 반갑습니다.…우리에겐 남북분단과 해외에서도 떨어져 이산의 슬픔을 겪어야 하는 두가지 비극이 있습니다. 시대가 발전해 이렇게 막혔던 벽을 넘어 서로 만나보니 한가지 비극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입니다.…여러분들이 조국을 보고싶듯이 조국의 동포들도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대충 이런 인사말이 끝나자 곳곳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서로 질문하려고 야단이었다. 떠듬거리는 한국어,노어가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백발의 박니콜라이씨(67)는 『조국에 다녀오고 싶은데 도와줄수 없겠느냐』고 했고 노동자인 이발레리씨(24),의사 최세르게이씨(25)등 우리말을 모르는 3세,4세들이 다투어 일어나 『어떻게 해서 경제가 발전했느냐』 『남쪽노동자들은 어떻게 사느냐』 『고국동포들이 정말 우리를 보고싶어 하느냐』는등 많은 질문을 던졌다.
주부 이라리사씨(30)등 여인들은 결혼풍습등과 여자의 취업률 남녀임금차이 여성단체수등을 자세하게 물었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을 해줬다. 그들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기도하고 놀라워 하는 빛도 보였다. 그들의 눈빛은 처음보다 훨씬 따뜻하게 변해 있었다.
모임이 끝난뒤엔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다투어 저녁초대를 하려했다. 우리는 그중 발틱해 가까운 한 동포의 아파트에서 저녁을 먹고 밤늦도록 핏줄의 정을 나누며 얘기꽃을 피웠다.
헤어질때 강마화나시씨(32)등 몇몇 동포들이 조국말을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우리말사전과 교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말사전을 갈구하는 그들은 영원한 한핏줄이었다. 【모스크바=조성호특파원연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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