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9 그때의 열정과 의기,그리고 총성이 멈춘 직후의 신선감이 다시금 기억속에 생동한다. 어느덧 30년,파란과 굴곡의 세월이 흘렀다. 변혁은 꿈을 피어 낸다. 그날의 꿈은 아직은 미완인 채 우리에게 의미 부각과 실현을 요구한다. 그 정신이 박제가 아닌 역사의 동태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ㆍ19가 구현하려는 「그날」은 여전히 미래의 과제로 남는다.30년이 지난 4ㆍ19는 오늘의 현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역사의 중요한 변혁은 후대에 의해 성격 규명과 평가작업의 세례를 받게 마련이다. 역사안의 4ㆍ19도 이 범주에 속한다. 의거에서 혁명까지,시대흐름에 따라 평가는 달라졌고 또 달라진다. 한편으론 소요로 보는 견해부터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으로 비약하는 성격 논쟁 또한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숭고한 정신은 현실과 차단당하는 시련을 겪으며 좀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단순한 감회에 잠기거나 현실 한탄에 안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원점으로의 회귀를 생각해 보게 된다. 4ㆍ19의 근원은 부패한 독재정권에 의해 자행 된 부정선거를 단호히 거부하는 순수한 구국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주체는 대학생과 지식인이었으나 참여는 범국민적인 것이었다.
왜 부정선거를 거부했는가.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확립과 사회정의의 실현,나아가서 통일을 달성하려는 민주적 염원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독재를 무너뜨렸고 부정부패의 척결과 민족자존 앞에 목숨을 던진 것이다.
이 정신과 이념을 편의와 아전인수로 해석함은 용납될 수 없다. 그 활화산을 정치목적으로 막아 보려는 만용은 무모하기만 하다. 더욱 의도적인 이념의 착색은 역사의 훼손일뿐 4ㆍ19정신과 무관함을 엄하게 밝혀둘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지난 30년간 4ㆍ19자체가 수난의 과제로 변질된 인상이 없지 않다. 특정한 목적과 의도에 따라 고양되는가 하면 억제되는 모순을 저질러 왔다. 아직 「미완의 딱지」가 붙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선거풍토의 개선은 요원한 것만 같다. 부정부패가 근절되었다거나 되고 있다는 확신은 아무도 갖지 못한다. 분배문제를 비롯한 사회정의가 확립돼 간다는 희망의 종소리는 우리 귀와는 너무나 멀게 떨어져 있다. 진실의 궤도를 잡아간다는 일이 이토록 어려움을 우리는 거듭 깊이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낙망할 까닭이 없다.
미완의 자각은 완성을 향한 충동과 자극을 제공한다. 그날의 열정과 의기를 다시 한번 불러 일으킬 여지가 얼마든지 남이 있음을 확신한다.
어떠한 명분과 이유로라도 4ㆍ19는 왜곡되어선 안된다. 근원적 정신에 충실하고 그의 실현을 위해 순수한 노력을 기울임이 후대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4ㆍ19의 진정한 승계는 그 정신을 양심과 정의의 용광로로 삼는 것임을 아울러 강조해 두는 바다. 완성의 그날까지 「그날의 함성」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가라앉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30주년을 맞아 4ㆍ19영령들 앞에서 새삼 옷깃을 여민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