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법(레벤스 레히트)은 두터운 6법전서나 콘크리트벽으로 구축된 검찰청,법원의 경직된 사고만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본디 판사는 원고와 피고의 진술ㆍ증거를 공정하게 채택,자유심증주의에 입각해서 판결을 내려야 한다. 형사소송법의 소추과정에서도 검사는 공익을 대표해,다시 말하면 국가사회의 안녕질서를 지키기 위해 공소권을 발동,범죄자를 구속하고 재판에 회부해 처벌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렇다고해서 검찰이 범죄혐의가 무거운 모든 피의자를 반드시 구속하고 꼭 기소하는 것이 옳지는 않다.가령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1백%발부되고 공판과정에서 검사가 구형한 형량이 그대로 형의 선고에 반영된다면 재판은 무엇 때문에 행하는 것이며 3권분립제도는 왜 있어야 하는가.
지난해 11월 일본의 신문들이 경찰,검찰에 구속되는 피의자의 이름 밑에 경칭(예컨대 「씨」)을 뺀 오랜 관례를 깨고 용의자라는 용어를 병기하기로 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경찰,검찰등 공권력에 의해 일단 구속되어도 누구나 「씨」자가 붙는 대우를 받고 있다. 근대형사법의 기본정신은 최종심(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기 전에는 누구나 일응 무죄라는 추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요즘 검찰과 법원간에 벌어진 잦은 영장기각과 집행유예시비,양형의 차이를 둘러싼 갈등을 보고 착잡한 생각이 든다. 검사는 모든 범죄혐의자를 엄격히 수사해서 그중 구속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확신할 때 당연히 영장을 청구할 것이다. 그에 대해 판사는 자백의 신빙성,증거보완,그리고 정상관계도 참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데 서울지법동부지원의 경우 구속영장 기각률이 전국평균인 8.4%에 비해 11.6%를 나타내 검찰이 기각률이 높은 판사의 리스트를 작성했다는 보도다.
우리는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법관의 재량권에 대한 침해라고 믿는다.검찰이 바로 담당판사를 가려서 영장을 청구하는 일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검사의 인지사건을 별도로 고려해 주어야 한다는 발상도 문제다.
또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검사가 구형한 형량이 판사의 선고형량의 반밖에 안돤다는 시비이다. 판사가 형법에 규정된 양형의 조건에 따라 피고인의 연령,성행,지능,환경,범행의 동기와 수단,초범여부도 참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범죄자를 처벌할 때 응보형보다는 교육형으로 가는 것이 근대형사법의 추세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7일 사형이 집행된 흉악범 9명 가운데 5명이 죄과를 뉘우치고 눈ㆍ콩팥등 장기를 기증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판사개개인이 독립된 재판권을 행사함에 있어 자신의 소신ㆍ철학을 행여라도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법부는 본디 「법의 형평」을 「잣대질」하면서도 보수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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