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족령 불구 천안문에 상춘객 수천명 몰려/해외 반정부활동ㆍ몽고개혁 등으로 계속긴장중국당국을 긴장시키고 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호요방 전 중국공산당총서기의 사망 1주기인 「15일」이 일단 무사히 지나갔다. 그렇다고 중국당국이 안심하고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니다.
5ㆍ4운동 71주년과 6ㆍ4천안문사태 1주년을 앞두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15일 발생한 한 청년의 호추모 해프닝을 단순히 「한 미친 사람의 짓」이라고 넘겨 버릴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30대중반으로 보이는 이 청년은 15일 당국의 추모행사 금지와 경찰의 엄중한 경계속에서 「호요방과 자유ㆍ민주를 위해 숨진 영웅들을 위해」라고 쓴 리본을 단 화환을 손수레에 싣고 천안문광장 중심부 인민영웅비로 돌진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체포된후 『나는 호와 6ㆍ4사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북경에 왔다』고 소리쳤다.
또 각 직장별로 직원들에게 4∼6월엔 천안문광장에 가지말라는 지시가 있었는데도 이날 수천명의 「산책객」들이 모인것을 보고 한 지식인은 『인민들이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다』고 현재의 중국의 분위기를 압축해 표현했다.
호요방 전공산당총서기의 죽음은 모택동ㆍ주은래 사망이후 최대의 시위를 불러일으켰고,개혁의 상징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의 방중을 계기로 시위는 걷잡을수 없이 확산됐으나 결국 6ㆍ4천안문사태로 결말 났었다.
그러나 민주화를 주도했던 핵심세력들의 해외망명과 계속되는 이들의 공개적인 반정부활동, 소련ㆍ동구의 공산독재 폐지까지 이른 민주화개혁과 이웃 몽고의 변화,한동안 잠잠했던 신강위구르자치구등 변방의 소수민족분규 등은 중국당국을 계속긴장케 하고있다.
중국은 6ㆍ4사태이후 이러한 외풍을 막고 내연하는 민주화요구를 진정시키기 위해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왔다.
대학생들의 사상강화를 위해 하방운동을 재개했으며, 지도층의 부패척결운동과 추방을 실시했고, 폭동진압경찰을 창설하고 대학가에 대한 순찰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심심찮게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민주화요구 움직임도 보도를 통해 알려져왔다. 최근엔 지난 5일 청명절을 맞아 대학생들이 천안문광장에서 침묵시위를 벌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여기에 등소평이후를 노린 지도층 내부의 권력투쟁과 각종 인사개편설이 이따금씩 흘러나왔다.
오는 23일의 이붕총리 방소도 한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총리의 소련방문은 지난해 고르바초프의 방중에 대한 답례형식으로,그는 소련측과 지난해 중소정상회담에서 결정된 국경지역 병력감축 등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정식발표됐었다.
그러나 지난해 민주화 시위중 당시 조자양공산당총서기가 북한방문후 실각했던 경험이 있어 6ㆍ4사태의 주역인 이총리의 방소를 두고 조심스러운 추측도 일부에서는 나오고 있는 상태다.
민주화 개혁이라는 세계적인 조류에 맞서 체제고수를 수차 천명했던 중국에는 여전히 산넘어 산이 가로막고 있다.【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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