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린핀에서 마르코스가 쫓겨나고,아이티에서 뒤발리에가 밀려나던 86년 세계는 제3세계의 악명높은 두 독재자에게 흔히 보는 드라마의 막판이 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을 짓밟고 국민을 지배하던 세계의 독재자들이 줄줄이 쫓겨나는 한 시대의 시작이었다.88년 한국에서 5공화국이 막을 내린 것을 비롯해서 중남미의 군사정권들이 줄줄이 권좌에서 밀려났다. 중남미 독재정권의 몰락은 최근 니카라과의 좌파정권몰락과 10여 개국에서 실시되는 선거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폴란드에서 사실상 공산정권이 무너진 뒤를 이어 헝가리,동독 등 동유럽공산권에서 잇달아 「투표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제 동유럽은 소련을 빼놓고 거의 모든 나라들이 비공산정권 지배하에 들어갈 것이 확실해졌다.
더구나 소련에서도 발트3국이 독립에의 길을 뛰기 시작했고,그밖의 소수민족들이 목청을 돋우고 있다. 오랫동안 소련의 영향권에 있었던 몽고에도 뒤늦게나마 의회주의로의 개혁이 시작됐다.
우리 자신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렀던 뼈저린 체험을 해야 했던 것처럼,80년대후반 세계는 제3세계와 동유럽공산권에 걸쳐서 독재를 거부하는 민중의 저항이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는 데 일단 성과를 거둔 역사적 전환기였다.
세계를 휩쓴 이 민주화의 폭풍은 지금 세계의 오지인 히말라야에까지 이르고 있다. 7주간에 걸친 국민의 민주화시위에 비렌드라국왕은 결국 다당제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어귀에 자리잡은 네팔은 인구 1천8백만중 3분의1만이 글을 읽을 줄 아는 나라다. 국민소득 1백60달러에 30년전 입헌군주제헌법에 의해 의회까지 해산됐다.
이번 정치적폭풍의 직접적인 원인은 친인도계 정부수립을 노리는 인도의 경제적 압력에 있었다. 어쨌든 국민의 민주화요구에 힘으로 맞서 온 국왕이 「체제내 개혁」에 성공,정치적 안정을 달성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히말라야 오지의 이 왕국이 더이상 비극적인 유혈을 피하고,정치적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80년대 후반부터 세계의 진로를 바꿔놓고 있는 민주화의 역사적 흐름을 주저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민주화의 바람은 체제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중국의 오지 신강에까지 번지고 있다. 이제 민주화개혁은 세계의 어디에도 성역을 허용하지 않는 역사적 흐름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아시아공산권은 아직도 개혁을 거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평양측은 최소한의 경제적 조정조차 거부하고 있다. 당초 예정된 일정보다 7개월 앞당겨 오는 22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실시되는 이유는 아직 분명치 않다.
세계적 대세를 주목하는 한쪽에서는 북한이 새로운 최고인민회의구성을 계기로 그나름의 정책조정과 체제개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과연 그럴지 두고 볼 일이지만,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북한사회의 민주화를 뜻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히말라야와 중앙아시아의 오지에까지 미친 민주화의 거대한 물결을 보면서 결국 이 물결이 굳게 닫힌 북한의 문을 열게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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