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부 유문정씨와 3남매/빙판낙상후 사글세 못내 쫓겨나/일수얻어 뒤산쓰레기장에 터전/“자식들에 미안” 한밤 냉기보다 더 시려돈이 없어 방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평지에서 산자락으로,산자락에서 산비탈로,산비탈에서 산마루로 자꾸만 밀려 올라간다. 서울의 산들은 가난할수록 높은 곳에 사는 도시빈민들의 모습으로 「가난의 피라미드」구조를 이루고 있다.
자신들을 누가 밀어올리고 있는지도 잘 모른채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은 이제 어디로 더 갈 수 있는 것일까.
최근 서울 은평구 수색동 산30일대 2백여미터 높이의 공원용지(속칭 봉산)에는 무허가 천막집이 하나 생겼다.
사글세방도 얻을 능력이 없는 파출부 유문정씨(39)와 3남매는 지난2일 이웃이 알지 못하게 밤을 도와 가파른 산길로 세간살이를 옮겼다. 산자락인 수색동 3의2 한평반짜리 사글세방에서 1년동안 부대끼던 유씨가족은 「도시빈민」에다 「무허가」의 딱지를 하나 더 붙이게 됐다.
보증금 1백만원 월세7만원짜리 사글세를 사는 동안 유씨는 찢어지는 가난에다 빙판에 미끄러져 팔까지 다치는 바람에 일을 나가지 못한채 밀린 방세와 3남매의 공납금으로 보증금을 다 까먹었다.
겨우내 참아준 주인집의 방값독촉이 잦아지자 유씨는 일수 돈으로 마련한 10만원으로 천막재료를 산뒤 아이들 몰래 봐두었던 봉산중턱 쓰레기장에 올라가 철모르는 막내아들(9ㆍS국교3)과 함께 터를 다졌다.
지난달 30일 무허가건물이 들어선다는 주민들의 신고로 철거하러 달려왔던 동직원 6명은 『곧 구청철거반이 들이 닥칠테니 제발 돌아가라』고 설득하다가 너무도 딱했던지 1∼2만원씩 거두어 한달치 방값인 7만원을 건네주고 돌아갔다.
유씨는 이 돈에서 4만원으로 밀린 전기료를 내고 셋방살이를 마감했다. 딴 곳에 세를 얻어 철공소를 경영하다가 엄청나게 뛴 전세값때문에 기계를 집에 들여놓으려고 방을 비워줄것을 요구하는 주인댁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씨는 남편이 말도없이 가출해 버린뒤 82년부터 수색에 들어와 행상과 파출부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제 천막집에 살면서 2∼3㎞씩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하는 장남(15ㆍS고1)과 장녀(17ㆍM여고2)를 볼낯이 없게 됐다.
창도 뚫지않아 항상 촛불을 켜고있는 천막은 낮에는 따뜻한 봄볕에 후끈거리다 밤이 되면 뼈속까지 냉기가 스며든다. 맨땅위에 눈가림으로 깔아놓은 거적과 장판에서 하룻밤을 지샌 유씨는 자식들이 바르게 커줄지가 제일 걱정스러웠다.
어릴적부터 부잣집 부엌데기로 자란 유씨는 대학에 다니는 주인집 딸이 부러워 부엌에서 한글을 깨쳤다.
단속반과 숨바꼭질을 해가며 행상을 했지만 가난은 벗어날수 없었고 유씨는 자식들에게 아침상 한번 차려줄 수 없었다.
장녀는 성적도 상위권일뿐 아니라 미술에 남다른 자질을 나타내 교사들로부터 칭찬을 들어왔다. 그래서 물감하나 사주지 못하는 유씨의 가슴은 천막의 냉기보다 더시리다.
월8천원의 의료보험료도 몇달째 밀린 유씨는 부러진 팔목이 아직 낫지않아 파출부일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동사무소에서는 천막철거를 나왔다가 사정을 알고 영세민으로 등록시켜 주기로 했으나 취로사업중 가장 낫다는 공동변소청소도 월20만원이 보장될뿐이다.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으면 천막을 챙겨들고 산위로 올라올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간곡하게 말리는 동사무소측의 걱정이 유씨를 더욱 마음아프게 하고있다.<장병욱기자>장병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