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의 김장김치는 익어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보통사람이건 한나라의 지도자이건 사람의 생애도 그와같아 연륜을 쌓으면서 삶의 쓴맛 단맛을 골고루 겪어 삭이고서야 비로소 원숙해지고 치세의 경륜도 갖춰지는것만 같다.한국일보가 30일 독점전재를 끝낸 닉슨회고록(발췌)은 그런 의미에서 내용이 퍽 진솔했고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은것으로 느껴졌다.
먼저 그 회고록에서 인상적이었던것은 닉슨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면서,감내키 어려운 대통령직사임의 치욕으로 빠져들어야만 했던 깊은 좌절의 심연을 꾸밈없이 토로한점이었다.
닉슨은 사임직후 정신은 물론이고 육체적 건강마저 깡그리 파괴되어 스스로도 도저히 살아날것 같지 않았었다면서 회고록을 쓴것도 패배와 좌절을 겪은 나머지 자신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낙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분명히 했다.
회고록의 말미에서 닉슨은 65년전 12살의 어린시절 자신이 처음으로 그랜드캐년을 찾았을때를 언제나 잊지않고 있다고 담담히 기술했다. 세계 7대불가사의중 하나라는 그 장엄한 대자연의 경관을 처음에는 남쪽산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으나 그곳의 참모습을 비로소 본것은 11㎞나 아래쪽의 강쪽으로 내려가 대경관을 올려다 봤을때였다는 것.
그러면서 닉슨은 밑바닥에 깊이 빠져 본 사람이라야만 높은자리의 고마움을 진정으로 알게된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 회고록이 준 또다른 인상은 영광과 좌절의 과정을 끝없는 도전으로 극복해오면서 닉슨이 갖춰온 정치와 외교에 관한 탁월한 식견과 경륜이다. 같은당출신의 후배현직대통령부시를 「미식축구선수 조ㆍ몬태나처럼 짧고 확실한 패스만 해 성공확률이 높다」고 한편으로 치켜주면서 「그가 충격적인 조치를 취하려들지않는것은 독자적인 견해를 갖고있지 못하다는 말이된다」고 다른편으로는 충고를 주는등 날카로운 판단과 노회함을 아울러 보인것이다. 고르바초프에 관해서도 자신의 정치생명유지를 위해 개혁정책을 밀고있고,그 개혁정책을 살리기위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또 도박판에 던지는 「정치도박사」라고 정확히 꼬집어내는 닉슨의 표현은 얄밉기까지 한것이다.
이같은 닉슨의 존재를 놓고 최근 타임지는 「좋아하거나 싫어할뿐 결코 무시할수는없는인물」로 표현했다. 또한 「그가 지난30년간 미국정치에서 최선과 최악의 양면을 두루 지배하고 상징해 오고있다」고도 평했다. 그러고보니 철저한 반공주의자에서 데탕트의 주창자로,고르바초프개혁의 날카로운 관찰자로 변모ㆍ성장해온 77세의 닉슨은 드디어 워터게이트의 치욕을 딛고일어서서 세계적 거인의 풍모를 보이기에 이르렀다.
사실 닉슨처럼 영광과 좌절의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더욱 지혜와 경륜을 축적해온 믿음직한 원로가 버티고있는 나라나 사회는 참 든든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전직대통령들은 어디에가 있는가. 우리의 과거와 오늘을 생각하면 왠지 답답하고 안타까워만진다. 탁월한 경륜가 닉슨에게 오늘의 우리지도자를 평하라면 어떤 소리를 할지도 한편으론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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