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으로 비판일색… 멀어져/「보트피플」「대학살」보면 당시언론판단 틀렸다 생각/「화살」맞아도 반격자제가 유리…결국 언론에 못당해나의 언론관을 기술하기에 앞서 한 일화를 소개한다. 나는 항상 정치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도 프랭클린ㆍ루스벨트대통령이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다는 사실을 그의 사후에나 알았다. 당시 상영된 뉴스 필름 어디에도 휠체어나 목발이 나오지 않았으며 신문에서조차 그가 불구였다는 기사를 한 줄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언론이 그의 비밀을 철저히 감싸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대통령 뒤를 TV카메라가 줄곧 따라다니는 오늘에도 가능한 일일까. 오늘의 언론은 상대방의 약점을 더이상 감싸주길 원치 않는다.
게리ㆍ하트스캔들만 하더라도 사건기자들이 얼마나 공인의 사생활을 철저히 파헤치고 만천하에 공개했는가. 자신의 가족과 프라이버시가 언론의 무자비한 추적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않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정부요직에 등용되는 것조차 꺼리는 경향도 점차 늘고있다. TV가 없던 프랭클린시대로 돌아갈 수야 없겠지만 한가지 당부한다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공평한 언론은 현재의 일부 취재악습을 재고해야 한다.
이제 44년간 전국언론인을 상대한 경험을 통해 나의 언론인상과 언론관을 피력해본다. 언론인들의 지적수준은 평균 이상이며 정치적으로는 대부분 진보적이다.
이들은 여섯자리수의 급여보다는 퓰리처상을 더 소중히 여기는 야심가들이기도 하다. 또한 직업에 대한 강한자부심은 종종 자신보다 못한 정치ㆍ경제인을 상대할 때 그들을 천시하는 버릇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의 보수는 자신의 고용자를 헐뜯기 일쑤인 로비스트나 광고업자에 비해 형편없이 낮다. 기자들은 대부분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정상급의 기자들과 오프 더 레코드(보도불가조건)로 나누는 얘기는 상하의원들과의 만남보다도 훨씬 자극적이며 유익하다.
더 부연하자면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신문기자가 TV기자보다 지적이며 사려가 깊다. 또 사진기자는 취재기자에 비해 보수주의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편이다.
발행인들은 이제 기자들에게 보수를 주고 일을 시키지만 간여는 할수 없는 정치적 무능력자가 됐다. 이때문에 사설에서는 추켜세우고 기사에서는 깎아내리는 신문의 분열증세도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꼬집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이를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나 혼자만의 경험인지는 모르지만 언론종사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길 꺼리는 버릇이 있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줘도 고마워할줄 모른다.
워터게이트가 나와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때문이라는 지적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은 언론의 분위기를 극히 비판적으로 바뀌게해 행정부와의 관계가 자연 소원해졌다. 이때문에 대통령 재임동안 나의 언론관계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이 철수한후 파생된 보트피플 문제와 폴ㆍ포트에 의한 캄보디아인 대학살사건등은 우리를 비판했던 당시 언론이 잘못됐다는 나의 생각을 반증해 주고 있다.
언론은 그들의 취재대상인 정치인과는 종종 대립되는 관계에 놓이기도 하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여론조사에서 똑같이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이 진보적 입장에 치우쳤다고 본다.
나도 여기에 공감하지만 사실보도에 충실치 않다는 지적에는 반대이다. 기자들이 얼마나 충실히 또 정확히 자신의 기사를 준비하는지에 나는 감명을 받았다.
기자들의 태도가 불손하다는 비난도 잘못됐다. 대개가 정중한 편이며 개성이 강하다는 표현이 옳다.
다음은 나의 언론수칙이다.
▲편애하지말라. 대언론사만 상대하면 일시적 효과를 볼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이익이 된다는 점이다. 나는 가끔 헨리ㆍ키신저에게 소수의 대언론사 기자들의 인터뷰에만 응할것이 아니라 참신한 중소언론사의 기자들에게도 기회를 주라고 충고해줬다.
▲비협조적인 기자의 대통령동승 취재용 예약티켓을 취소하는데 망설이지 말라. 어느 법조항에도 비난만 일삼는 기자에게 특혜를 보장하라는 구절은 없다.
또 기자들에게 쓸데없는 향연을 베풀어서는 안된다. 대기자라면 이런 겉치레 방식에 화를 낼것이며,어느기자라도 지난주 당신과 조찬을 함께했다는 부담때문에 비판적 기사를 깔아뭉개지는 않는다.
▲언론의 화살을 맞더라도 반격을 자제하라. 물론 일시적으로 이길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이를 잊지않고 있는 언론이 결국에는 이기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비난을 무시하거나 비굴한 자세를 보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는 받은만큼 잘 대해주라는 뜻이다. 단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위해 잘대한다는 인상을 언론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대통령으로서 언론을 이길 수 있는 마지막 무기는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방법이다. 내가 전국민의 지지를 호소한 52년의 「체커스연설」과 69년의 「조용한 다수」연설이 한 예이다. 전국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중요 이슈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언론에 의해 희석될 우려가 있을 때에만 사용돼야 할 최후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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