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그토록 멀게만 여겨졌고 남북통일 전까지는 오랫동안 적대관계를 지속할 것으로 생각됐던 소련이 우리에게 선뜻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이번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 일행의 소련 방문성과는 매우 크고 중요하다. 소련측과 오는 12월안에 수교하기로 하고 이를위해 각료급 대표단의 접촉을 갖는 한편 노태우대통령의 방소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나 김최고위원이 고르바초프대통령과 요담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으로 이번 방소의 효과는 장차 소련의 대북한관계는 물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북한의 개방 그리고 남북한관계 변화등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성공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김최고위원의 소련 나들이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몇가지 염려스런 시각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국민이 가장 의아스럽게 여기는 것은 소련과의 국교수립을 과연 이처럼 곤두박질하듯 서둘러야만 하느냐는 점이다. 대소 수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세계 공산권의 종주국과 손을 잡음으로써 장래 그들이 후견역을 맡고 있는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케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간 교류의 촉진도 그렇고,대소경제적 진출 등 기대되는 게 한두가지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국가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는 밟아야 할 일정한 단계와 절차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한소수교는 불가피하게 미ㆍ일 등 우리 기존의 우방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며 우리가 앞으로 외교관계를 개설해야 할 중국과의 관계와도 상관되고 있는 문제이다. 기왕에 방향이 선 문제라면 충분한 협의나 검토는 수교의 내실화에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결코 해롭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소련이라는 수십년간 1당ㆍ1정책하의 획일된 대외행동을 보여온 상대를 대하는 우리 교섭팀의 천방지축성이다.
외교적 측면에서 정치인들의 역할은 경우에 따라 뜻밖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미수교국 접촉이나 또 관료적인 외교관들간에 풀지 못하는 현안을 정치인들이 전격 타결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정치인들은 물꼬를 트는 일이상을 넘어서는 안된다. 흔히 「정치인들은 대외국관계에 있어 약속이나 동의를 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무턱댄 약속은 자칫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김최고위원이 수교를 미루는 대신 총영사관 개설을 꺼낸 소련안에 선뜻 동의한 것과 서울에서의 소련 우주항공사진전 개최제의를 받아들였다가 검토키로 후퇴한 것등은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아닐 수 없다. 그많은 수행원팀에 외무부의 국장급 한명이라도 자문역으로 동행케 했어야 했다.
대소 수교교섭이라는 우리 역사상 중요한 외교업무의 장이 김최고위원과 박철언정무장관간의 공로나 인기 경쟁장으로 비쳐진 것도 그렇고 요담이다,친서답신이다 하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내용의 뉘앙스가 달라진 것 등은 자칫 우리활동이 결국 소련측의 뜻대로 이끌리는 결과를 빚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그 발표대로라면 우리의 외교에 중대한 이정표를 세운 셈이며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하나하나 허실과 완급을 가리며 할 때가 온 것 같다. 따라서 당장의 수교도 중요하지만 소련의 변화를 실측해보는 검증적 자세도 갖춰야 하리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소련측이 적어도 공개적으로 북한관계등에 관해 이렇다 할 언급이 없는 것은 깊이 유의해야 할 부문이라고 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