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주일여동안 소련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정작 외교업무의 직접당사자인 외무부는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한소간에 총영사관이 설치된다고도 하고 대표부관계로 격상된다고도 하는데 외무부의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사실여부를 말하지 못한다.소련에 우리 대표단이 가 있던 같은 기간 동구를 방문중이던 최호중외무장관은 총영사관 설치 소식에 『모르는 일』이라며 『소련방문단이 귀국한 후에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면서 무언가 씁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관을 수행중이던 담당국장도 외무부본부에서 주소영사처와 연락을 취하던 해당과장도 상황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방소단파견에서 구성부터 준비작업까지 철저히 배제된 외무부는 자신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모스크바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무 의견조차 제시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총영사관 개설 소식을 들은 외교관들은 『이미 영사처가 설치되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아연실색했으며 일부 소장 외교관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소련과의 수교에 어떠한 중간단계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외무부의 눈에는 이번에 소련에서 벌어진 일들이 대단히 위태롭게 비쳐지는 모양이었다. 몇몇 정치인의 손에 한 나라의 외교가 놀아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외무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건주의 외교가 빚을 수 있는 부작용은 단순히 국내의 정치게임에서 야기되는 문제점과는 다른 차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통외교가 수행하지 못하는 역할을 정치인이나 밀사외교가 대신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외교가 정통외교의 견인차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나서는 외교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그것도 분위기만 조성하는 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는 게 외무부의 시각이다. 상식을 피하다보니 방소단중 일부가 북한에 파견됐다는 「어이없는 기사」가 보도되는 사례까지 낳았다. 정치와 외교가 경쟁속에 혼합되니 이런 해프닝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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