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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생일 (장명수칼럼: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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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생일 (장명수칼럼:1359)

입력
1990.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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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의 한식당에 점심을 먹으러갔는데,중년여자 손님들이 옆방에 20여명쯤모여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방으로 맥주도 여러병 들어가고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걸보며 우리는 아마 계모임인가라고 생각 했다. 그런데 얼마후 그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사랑하는 김영숙. 생일축하합니다…>

사실은 옆방이좀 시끄러워서 우리방의 남녀손님들은 못마땅한 기분이었으나 중년부인들의 어린이같은 생일 축하노래는 우리모두를 웃음짓게 했다. 우리는 그들이 자기손으로 자기생일을 차리기가 쑥스럽고,남편과 아이들이 생일을 기억해 줄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아니꼬워서,친구들끼리 돌아가며 밖에서 생일잔치를 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은 나쁘지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중년여자들이 식당에서 생일 축하노래를 합창하는 것이 고상하지는 않지만 생일날 쓸쓸함에 빠져 『여자의 생일은 이렇게 시시해야 하나?』라고 불평하는것 보다는 낫다. 아이들도 크고 어느정도 여유를 갖게된 부인들은 친구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는데,이왕이면 생일잔치를 겸한 모임이 더욱 즐거울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여성모임은 회원들의 생일전날 꽃을 집으로 배달하고 있는데,그 꽃은 축하용이기도 하고 엄마의 생일을 온가족에게 알리는 시위용이기도 하다. 온가족의 생일을 다준비하면서 자기생일에 대해서는 공연히 멈칫거리게 되는 주부의 갈등을 그 축하꽃은 환한 기쁨으로 바꿔줄것이다.

대가족이 함께 모여살때 며느리의 생일은 그저 알게 모르게 시어머니가 미역국이라도 끓이도록 배려하면 다행이었지만,오늘은 사정이 다르다.

엄마의 생일은 아버지의 생일 못지않게 온가족이 함께하는 날이 돼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주부자신이 당당하게 자신의 생일을 차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아내가 소극적일땐 남편이 적극적이어야 한다.

주부들은 해가 바뀌면 온가족의 생일과 기념일과 제사 등을 달력에 적는데,남편의 수첩에도 이런날들이 적혀있어야 한다. 『엄마생일에는 밖에서 식사를 하자』든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먹자』는 등 미리 서두르는 성의가 필요하다.

이바쁜 세상에 생일따위로 쓸쓸해 하다니 라고 혀를 찰 일이 아니다.

엄마도 쓸쓸할때가 있고,가족의 관심과 위로가 필요하며,마음이 텅빌땐 방황하기도 한다는 것을 다른 가족들은 이해해야 한다.

식당에서 「생일축하합니다」를 합창하는 중년부인들의 모습은 즐겁고 재미있어 보였지만,세상이 변해도 주부의 생일은 여전히 가정에서 소외 되고 있다는 한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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