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면담」 큰 성과… 대화통로 격상/방소단 이견ㆍ소 계산엔 경계소리김영삼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민자당 방소단의 7박8일에 걸친 소련방문은 정부의 연내 한소수교 실현 목표와 관련해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김최고위원과 박철언정무1장관 등 방소단이 소련의 당정 고위인사들로부터 수교시기등 구체적인 언질은 받아내지 못했지만 친선무드 확산등 사전정지작업을 통해 소측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같은 진단이 가능하다.
소련은 북한과의 관계등 미묘한 사정때문에 IMEMO를 표면에 내세워 김최고위원을 초청했지만,내면적으로는 남북한과의 3각관계를 치밀히 계산하면서 한소 관계개선과 관련한 여러가지 시사를 해주었다.
더욱이 IMEMO 소장을 역임한 야코블레프 정치국원이 김최고위원에게 한소수교에 대한 소측의 입장을 『양국간에 걸림돌은 없다』고 언급한 것이나 프리마코프 연방회의의장과 브루텐스 공산당 국제부부부장이 「김―고르바초프회동」을 주선했다는 사실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김―고르바초프회동」은 미수교국인 우리에게 정치외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소측의 이례적인 「특별예우」라는 점에서 회담내용에 상관없이 김최고위원 일행의 2차 방소중 가장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김―고르바초프회동」은 한소 양국간 연내 수교의 전망을 밝게 한 정치적 의미외에도 공식적인 대화통로를 최고위급까지 격상시켰다는 측면에서 한소관계의 징검다리역을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이와함께 2차대전후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소 양 진영의 냉전체제가 서서히 변화를 가져오는 상황에 견주어 볼 때 남북한의 긴장완화에도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정치적 사건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맥락에서 김최고위원 일행의 방소로 한소 양국의 정치ㆍ외교적 관계는 의외로 급진전될 가능성이 높으며 남북 관계개선등 한반도 주변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민자당과 IMEMO측이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소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동인식을 했다』고 합의한 대목이 이러한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 의미가 구체화된 것이 ▲한소 정상회담 제의 ▲소측에 수교ㆍ경협 동시타결 촉구 ▲투자보장협정 추진 ▲과학기술교류협력 ▲정당간 교류및 양국 국회의원 친선교류 등이다.
김최고위원의 정치적 방소활동과는 별도로 정부대표 자격인 박정무장관을 주축으로 한 대소협상팀도 소련내 당정 고위관계자들과 막후접촉을 통해 수교문제및 경협에 대한 실무적인 협상을 벌여 몇가지 수확을 거두었다.
박장관은 특히 블루텐스등 소 공산당 국제부관계자 및 외무부관계자들과 만나 한국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소측으로부터 「비공개조건」의 외교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이번 방소단의 괄목할 만한 또다른 성과는 소련의 당정및 학계ㆍ경제계ㆍ문화계 등과 다양한 대화채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즉 야코블레프 정치국원ㆍ프리마코프 연방회의의장을 비롯,브루텐스등 공산당 고위간부와 시타리안 부수상(대외경제위의장)ㆍ자소코브 최고회의 외교분과위원장 등 소련 권력핵심부에 지한파 인맥을 단단히 형성해 놓았다.
이밖에도 소정부의 정책자문기관인 과학아카데미의 말추코 원장ㆍ카네브 상의부소장ㆍ테레슈코바 해외친선협회장ㆍ로구노프 모스크바대총장 등 한소수교 여건조성에 큰 몫을 할 수 있는 민간 교류의 채널을 넓혀놓았다.
그러나 한소 조기수교에 강한 집념과 의욕을 갖고 있는 김최고위원이 소측에 적극의지를 보임에 따라 소련측이 경협조건을 유리하게 만들려고 수교협상을 끄는 인상도 있다.
사실 한소 양국은 이번 방소기간중 「국교정상화가 앞당겨질 수 있도록 협의와 교섭을 계속한다」는 원칙론적인 합의를 보았을 뿐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선 의견접근을 보지 못한 상태이다.
소측은 내부적으로 대한수교 전략을 세워놓고 다만 그 시기를 갖고 한국과의 협상에서 경제협력의 실리를 얻겠다는 것이며 장기적으로 한국내의 친소세력 확대와 문화교류를 통한 소련 영향력의 증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방소단이 이같은 소련의 장기포석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김최고위원 일행이 소당국과 논의하고 합의한 사항은 다시 정부 대 정부의 협상을 통한 여과과정을 거쳐야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의 2차에 걸친 방소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소련이 마음속으로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북한에 간접적인 개방압력을 넣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김―고르비회담」은 김일성에게 큰부담을 안겨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오는 9월께 상설대표부 설치,연말이나 91년초까지 수교」라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으나 이같은 일정이 실현되려면 소측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는 냉정하고 신중한 협상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어쨌든 김최고위원의 2차 방소로 수교를 앞둔 소련권력 내부에 사전 분위기는 충분히 조성돼 있는 만큼 국익에 최우선을 두는 총력외교의 뒷받침이 선행될 때 한소관계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모스크바=조명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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