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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목장의 결투」/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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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목장의 결투」/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0.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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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의 어둠을 헤치며 의기의 사나이들이 목숨을 걸고 결투장으로 향한다. 새벽안개에 싸인 목장의 모습이 어슴푸레 보이고 긴장과 간절함을 자아내는 「오케 커랠」의 노랫소리도 한껏 고조된다.­이쯤 얘기가 나오면 서부극 팬들은 금세 지난 60년대 인기를 모았던 서부극 「OK목장의 결투」를 누구나 떠올린다.지난 57년 제작됐던 그 영화는 존ㆍ스타지스 감독의 작품이다. 주연으로 나온 버트ㆍ랭카스터,커크ㆍ더글러스 등 왕년의 호한들의 명연,사나이의 의리와 우정이 진하게 깔린 서부극 정석의 스토리에 박진감있는 주제가가 곁들여 팬들에겐 퍽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서부극의 재미는 누가 뭐래도 사나이다움과 광대한 자연 두가지를 두루 맛볼 수 있기때문이라고 팬들은 입을 모은다. 복잡하고 자칫 옹졸해만 지는 현실생활의 답답증을 팬들은 리얼리즘과 휴매니티마저 적당히 담긴 그 활달하고 장쾌한 서부극에서 풀곤 했었다.

서부극의 막판에 으레 등장하는게 결투였다. 증오ㆍ불화ㆍ영광ㆍ명예회복 등을 위해 주인공들은 의리의 사나이답게 목숨을 걸고 권선징악의 총을 뽑았다. 「OK목장의 결투」에서는 주인공(랭카스터분)이 병으로 죽어가는 총잡이 친구(더글러스분) 몰래 결투에 나서지만 그 사실을 안 친구도 병상과 여인의 만류를 떨치고 달려와 결투에 합류하는 내용이 꽤 근사했다고 영화광들은 지금도 말한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말만들기의 명수들인 탓인지,30여년전의 그 서부극 제목이 엉뚱하게 되살아나 요즘 화제이다. 소위 「TK목장의 결투」가 바로 그것인데 OK와 같은 K자 돌림임을 전용해 요새 정치판을 마구 뒤흔들고 있는 대구 보선의 한심한 작태를 목장의 결투로 비아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서부시대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오늘의 TK지역과 같은 위세당당하고 막강한 목장은 감히 상상도 못했을 법하다. 또 그런 곳에서 뭣이 부족해 하찮은 결투를 빚게 만드는지도 아마 이해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마냥 전운이 감돌더니 끝내 「TK목장의 결투」란 가당찮은 제목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요즘 세상에 엄연히 결투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이처럼 결투딱지를 붙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민심이 이제는 천심이란 소리도 나올만하게 됐다.

극성 서부극 팬들에게 결국은 후보사퇴로 불발된 이번 TK결투가 어떻게 비쳐질까를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온다.

40여명의 금배지와 일가ㆍ동창ㆍ세례목사에 TK 대부들마저 어마어마하게 등장했는데 끝장엔 총소리 한방 없었으니 별 싱거운 결투도 다 봤다는 불평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의리도,해결의 명쾌함도 없이 정치적 도덕성 실종의 깊은 후유증만 남긴 결투 아닌 결투 상영으로 과연 영화관객석이 차겠느냐고 핀잔을 준들 말릴 도리가 없게 됐다.

그러고 보니 「하이눈」 「셰인」과 함께 「OK목장의 결투」의 산뜻한 결투장면들이 새삼 다시 보고싶어진다. 우리 정치판의 서부극 프로그램도 이제는 좀더 시원하고 믿음직스런 내용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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