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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외교목표는 반소동맹 분열”(닉슨 회고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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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외교목표는 반소동맹 분열”(닉슨 회고록:1)

입력
1990.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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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미에 해 될수도 /「고」의 벨벳장갑 속엔 강철주먹 숨어있어/소 지원하되 대외적 침략 완화 유도해야워터게이트사건으로 지난 74년 미대통령직을 사임했던 리처드ㆍ닉슨씨(77)는 최근 새로 펴낸 「투쟁의 무대­승리와 패배,그리고 부활」이라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사임에 얽힌 비화와 고르바초프,등소평 등 세계정상급 지도자들에 대한 인물평을 공개했다. 닉슨씨는 또 40여년의 정치생활을 통해 터득한 「언론 요리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역사의 전환기를 맞아 세계각국에서 다양한 견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때 미보수우익의 견해를 대변하는 정치원로로서의 그의 통찰은 음미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본지는 LA지사를 통해 회고록의 발췌문제를 긴급입수,이를 독점연재한다.【편집자주】

86년 크렘린궁에서 처음으로 고르바초프를 만났을때 나는 그의 카리스마와 지성,결단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엇던 것은 거의 절대적인 그의 자신감이었다.

내가 알았던 다른 소련지도자들과 달리 그는 자심감이 넘쳤다. 흐루시초프는 전략적인 대미열세를 허풍으로 은폐하고자 했다. 소련이 대미전략균형에 거의 도달하자 브레즈네프는 기회있을때마다 미국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르바초프는 지상배치 탄도미사일 등 주요부문에서 소련이 우위에 섰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흐루시초프나 브레즈네프와 달리 소련의 힘에 확신을 가진만큼 약점까지도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브레즈네프 만큼이나 완강한데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고 보다 능란하며 훨씬 예리하고 좀처럼 속셈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브레즈네프가 미국과의 외교대결장에 식칼을 들고 나왔다면 고르바초프는 단도를 들고 나온다. 그러나 늘상 그가 끼고 다니는 벨벳장갑 속에는 강철주먹이 감춰져 있다.

대화를 나눠보니 그는 아주 쌀쌀 맞았다. 내가 자신과 다른 견해를 밝힐때마다 그는 강력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또 때로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당시 나는 그가 정말로 화가 난 것인지,짐짓 그런 시늉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아마 두가지 다 였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는 냉정한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것 같았다.

고르바초프가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포기하지 않은채 소련 경제력 강화에 성공한다면 미국익에 대한 위협은 감소하기 보다는 증대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고르바초프의 진지하고 용감한 개혁을 돕되 소련이 대내적인 억압과 대외적 침략을 크게 완화할 만큼 충분한 개혁을 이루도록 유도해야한다.

지난 47년 존ㆍFㆍ케네디와 나는 트루먼 대통령의 대그리스,터키원조안을 지지했다. 당시만 해도 그것은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볼때 그것은 아주 쉬운 결정이었다. 공산세계와 자유세계의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은 한가지뿐이었다. 그러나 더이상 양극화된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닌 만큼 우리의 선택은 훨씬 복잡하고도 어려워졌다.

오늘날 공산주의는 불신받고 있으며 서방의 정치,경제적 자유이념은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앞으로 지정학적으로 확고해져야만 한다. 공산주의자들의 냉전에서 패배했다고는 하나 서방도 아직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다.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외정책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서유럽과 일본 등 동맹국의 안전보장에만 만족하고 있어선 안된다.

고르바초프는 동구의 변화에 대해 예상밖의 자제력을 발휘함으로써 세계적인 신망을 얻는데 성공했다. 동구의 변화는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실패와 지난 40여년간 소련의 하수인역할을 해온 꼭두각시 정권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동구의 주요도시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 시위대들은 서방이념에 경도돼 있었다. 각국의 개혁지도자들은 마르크스나 레닌의 이론대신 미독립선언과 미헌법전문을 연상시키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도 고르바초프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해 계속 충성을 서약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그의 태도는 두가지 중요한 지정학적 목표달성을 위한 연극일 수도 있다.

첫번째로 그는 침체된 소련 경제의 회생을 위해 서방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고 싶어한다. 그는 서방의 도움없이는 경제개혁이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으며 이 핵심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지정학적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그는 소련의 적들을 분열시키고 소련의 국제정치적 고립을 해소하길 원한다. 그의 전임자들은 미국과 서구,일본과 중국 등 세계적 강대국들이 일치단결해 소련에 대항하도록 만들었다.

고르바초프의 대외정책은 대체로 세계적인 반소동맹의 해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회교반군(무자헤딘)의 고위야전군 사령관인 압둘ㆍ라힘ㆍ와르닥장군과의 만남은 고르바초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87년과 89년 두차례에 걸쳐 내가 만난 와르닥 장군은 공산당 집권전 정부군 장교를 지냈고 미군사학교를 수석졸업한 인물로 흔히들 떠올리는 무식한 이슬람 전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87년 나는 집권직후 무자헤딘에 대해 강경태세를 보였던 고르바초프가 갑자기 평화협상에 응하는 것은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체면치레용」이 아니겠느냐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이에대해 러시아 전래의 아프간 장악 의욕과 명백한 소련의 공산정권 유지의도를 지적하면서 『고르바초프의 진정한 의도는 서방측의 대아프간 지원공약을 희석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외교적으로 아프간을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분석은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와르닥이 이미 알고 있고 서방이 아프간 사태를 통해 배워야만 할 교훈은 『고르바초프가 전술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소련의 지정학적 목표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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