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선거역사 부정의 2대 챔피언은 아무래도 대통령선거의 경우 3ㆍ15선거,국회의원은 3공의 7대선거가 될 것 같다. 1967년6월8일 실시된 7대 총선거는 선거 부정의 모든 사례가 총동원된 「부정의 결정판」이었다. ◆당시 정부ㆍ여당이 이토록 무리를 한 것은 3선 개헌에 필요한 원내의석 3분의2이상을 확보하려는 다급함 때문이었다. 국민과 학생들이 반발하고 야당이 6개월간 국회등원을 거부하자 박정희대통령도 외면할 수 없어 담화를 통해 『온 국민과 함께 정부도 분개하고 규탄하고 있다』고 부정을 시인했다. ◆당시 경기도 화성군은 부정개표의 금메달지구. 중앙선관위의 지시에 따라 6월16일 서울지법수원지원 2호법정에서 재검표가 실시됐다. 투표함을 차례로 열자 「부정의 흔적」들이 너무 엄청나 검표종사원들마저 놀랄 정도였다. 모측의 사주를 받은 개표종사원들이 손에 묻혀둔 인주로 야당후보표를 마구 문질러 무효표를 만든 것으로 소위 빈대표 쌍가락지표 곰보표 피아노표 등이 그것이다. ◆결국 재검표로 야당후보가 도둑맞았던 1천2백99표를 되찾았다. 중앙선관위는 다음날 전체회의에서 의원선거사상 처음으로 「당선자착오시정」(법1백28조) 조항에 따라 차점자였던 신민당의 김형일후보를 당선자로 번복,결정했다. 처음 당선자로 선언됐던 공화당의 권오석씨는 선거 나흘후인 12일 개표소에서 선관위원장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됐고 수감되기 앞서 당선 사퇴서를 국회에 냈었다. ◆그뒤 폭행과 함께 부정개표 지시혐의로 조사를 받아온 그는 군행정계장과 함께 병보석됐으나 항소심에서 선거법위반으로 1심대로 2년 징역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었다. 그 일로 영원히 정치와 결별할 것 같았던 권씨가 입각한 이희일동자부장관의 의원직(전국구) 사퇴에 따라 민자당의원직을 승계하게 됐다. ◆때마침 대구와 진천에선 보궐선거 열기가 한창이다. 엄정을 다짐하지만 어떤 기찬 탈법이 또 등장할는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탈법ㆍ불법을 동원해 당선된 「의원」이 국회에 와서 벌일 정치란 빤하다. 컴퓨터 용어로 흔히 쓰이는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을 유권자들은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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