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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총리/김창열 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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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총리/김창열 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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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 국무총리께-.먼저 유임을 축하합니다.

지났으니까 하는 말입니다만,개각논의가 처음 있었을 때부터 총리의 유임을 점치는 사람은 꽤 많았습니다. 위기에 대처하는 총리의 외유내강 하면서 의연한 자세,각내의 인화와 결속을 소리없이 다져온 통솔력이,다음 내각을 계속해 맡길만 하다는 것이 중론이나 다름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중론을 그럴싸하게 여겼던 터라 총리의 유임소식을 반갑게 들었습니다.

하지만,그렇기에 더욱,개각과정을 통해서 느꼈던 아쉬움,또는 의아함도,좀 거북하긴 합니다만,이런 기회에 짚어두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중의 하나는 우리 헌법에 관계가 됩니다. 헌법 제62조 ①은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했습니다. 이 조문대로 하면 개각을 앞두고 김종필씨나 김영삼씨가 말하던 「대통령의 고유권한」도 사실은 「대통령만의 고유권한」이 아닌 것입니다. 꼬집어 말하면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는 「국무총리의 고유권한」 행사가 있은 뒤라야 가능합니다. 국무총리가 개각의 1차적인 주역이란 뜻도 됩니다.

하지만 이번 개각과정은 어떠했습니까. 신문에 난대로 하면,15일 하오 총리는 대통령과 독대했습니다. 유임통고와 함께 개각윤곽을 듣고 협의도 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다음날(16일) 대통령은 두 김씨와의 회동을 겸하여 시골로 갔고,총리는 내각의 일괄사표를 받았습니다. 다시 다음날(17일) 새벽 총리는 퇴임장관들을 하나 하나 전화로 불러 위로했습니다. 대통령 부재중인 청와대의 개각발표는 이날 상오 10시였습니다. 이를 받아 총무처는 총리 명의의 「임명제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이날 하오 시골서 돌아온 대통령은 이를 결재하고,19일 새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주었습니다.

이 경위를 보아 총리가 개각내용을 미리 안 것은 틀림없으나,사전에 제청권을 행사한 티는 없습니다. 15일 이전에는 총리유임 여부초자 확실치 않은 만큼 임명제청 운운할 틈도 없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총리의 임명제청권은 개각 인선 사후의 「임명제청서」 한장에 흔적을 남겼을 뿐입니다.

상식적인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임명제청권이란 인선의 권한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헌법 제104조에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한 것을 유추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규정의 취지는,대통령은 대법관의 임명권자이나 대법관 인선의 권한은 없다고 하는데 있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총리의 제청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총리의 임명제청권은 우리나라의 권력구조­정부형태와 직결되는 심각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우리 헌법학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논쟁의 한 초점은 총리의 제청없는 국무위원의 임명입니다. 이에 대하여 다수설은 당연 무효라고 합니다. 소수설은 임명 자체는 유효하나 대통령 탄핵의 사유는 된다고 합니다. 어느편이나 제청없는 국무위원 임명이 위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이죠. 나아가 대통령은 총리의 제청대로만 국무위원을 임명해야 하느냐도 논쟁의 한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다수설은 이 물음에 부정적입니다. 어차피 총리는 대통령과 인선을 협의할테니 물음의 의미가 없다는,다분히 현실론적인 견해같습니다. 이와 반대되는,총리의 임명제청이 대통령을 구속한다는 주장은 「총리의 고유권한」을 신장시켜야 한다는 희망을 반영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소수설이나마 그런 학설이 있다는 것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헌법학자간의 논쟁을 빗대어,이번 개각의 합헌여부를 운운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정부편의 율사들이 나서서,총리의 「임명제청서」가 먼저 있고,그 연후 대통령의 국무위원 임명 결재가 있었으므로,이번 개각절차에는 아무런 흠이 없다고 주장한다면,그저 웃어 넘길 도리밖에 없습니다.

하지만,문제가 이런 의문들을 묻어 버리게 하는 우리 헌법현실에 있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헌법은,제헌헌법이래로,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면서도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가미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대통령에게 국정을 맡기되,대통령의 1인 독재는 용납 않는다는 취지일 것입니다. 이런 이상론이 국민의 여망과 일치하기에,국무총리ㆍ국무위원ㆍ국무회의,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과 부서권,국회의 국무총리 임명동의ㆍ해임건의 등의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온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운영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금의 6공헌법은 5ㆍ16개헌을 이어 국무회의를 정책심의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의결기관이 아니므로 대통령의 자문기관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총리는 국무회의의 의결없이 대통령이 결정한 국정행위에도 부서를 하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국회의 국무총리 임명동의권은 「총리서리」라는 헌법에 없는 방편으로 해서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부총리가 생긴 뒤로는 이른바 경제팀이 각내각이나 다름없어서,헌법 제86조가 규정한 총리의 통할을 벗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조각권에 버금할 총리의 임명제청권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이번 개각과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마디로 해서 우리 헌정사는 절충형 헌법을 운영하면서,줄곧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환골하여,「절충의 묘」를 해쳐온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적어도 절충형인 우리 헌법의 취지를 수긍하고,또 헌법의 명문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민주사회의 상식 제1조를 인정한다면,앞에 본 관행은 어떻게든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각이나 조각이 있을때 대통령은 먼저 총리를 지명하고 국회소집을 요구한다,국회동의가 난 뒤 새 총리는 제청권을 행사하며 내각을 구성한다,국무회의는 의결기관처럼 운영하여 정책을 정하고 집행하되,그 결과에 대하여는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한묶음이 되어 대통령과 국회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이정도면 됩니다. 이것으로 우리 절충헌법의 정신은 십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합리적이고 더 나아가 민주화의 명제에 합치함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총리가 주장해서 될 일이 아니고,총리가 그런 주장을 할 만한 처지에 있지 않음도 잘 압니다. 그래서 총리의 유임을 반긴다고 시작한 글이 이처럼 거북한데로 흐른 것이 민망하기도 합니다만,앞에 적은 새로운 헌정운영의 소망은 여론의 향방에도 달린 것이라 생각하여,이렇게 공개된 지면에 글을 씁니다.

총리의 외유내강한 통솔력이 헌정운영에 「화」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새 내각의 성공을 기원해 마지 않습니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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