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독일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지던 날 세계는 새로운 역사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로부터 넉달 뒤에 세계는 그 새로운 역사가 분명히 다가오는 모습을 짐작하게 됐다.지난 18일 동독사람들은 40년만에 치른 자유선거에서 결정적인 다수표를 기민당을 주측으로 하는 보수연합쪽에 던졌다. 이로써 독일통일은 「최단시일 안에」 이루어져야 된다는 동독시민들의 뜻을 확실히 한 것이다.
40년만에 치러진 동독의 자유선거에서 우리는 1당독재의 허구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동독시민들은 40년 동안 지배자의 자리를 지켜온 공산당을 하루아침에 16%의 소수파로 밀어냈다. 앞으로 줄줄이 이어질 동유럽 각국 선거의 「예고편」이라는 관점에서 주목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동ㆍ서독의 1대1통합을 내세운 사민당이 제1당의 자리를 차지하리라던 예상을 뒤엎고,서독의 동독 흡수를 내세운 보수연합이 결정적 승리를 거둔 사실에서 우리는 독일민족의 재통합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선거운동 막판에 콜 서독수상이 동독 마르크화와 서독 마르크화를 저축예금에 한해서 1대1로 바꿔주겠다고 공약한 것도 사태를 뒤집어놓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선거가 있기 전에 이미 동독은 와해된 상태에 있었다. 공산당정권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동독군은 기능을 상실하고, 각 기업들은 서독과의 합작을 준비하느라 부산한 상태에 있다.
이제 남은 고비는 오는 12월 서독의 총선거가 된다. 애초에 서독의 지방선거의 모습으로 진행된 동독 총선거에서 콜수상의 기민당이 승리한 만큼,12월의 총선을 위해서도 기민당은 유리한 발판을 차지한 것이 확실하다.
12월 총선거가 있기 전에 보수연합이 이끄는 동독과 마찬가지로 기민당이 이끄는 서독은 우선 「통화통합」에 합의를 봐야 할 것이다. 환율을 어느 선에서 결정하느냐에 따라 동ㆍ서독의 이해관계와 부담이 달라질 것이지만, 이제 근본적인 어려움은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동독에서 보수연합이 결정적 승리를 거뒀다는 것은 따라서 동ㆍ서양쪽의 주변 이웃나라들에게 더 큰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소련이 요구하는 통일독일의 탈북대서양동맹(나토)ㆍ중립화는 그만큼 수세에 몰릴 것이다. 동유럽권에서도 폴란드는 오히려 통일독일이 나토안에 묶여 있어야 된다는 입장에 있다.
아마도 유럽사람들은 동ㆍ서를 가리지 않고 거의 분명해진 독일 재통일의 바람을 피부로 느끼면서 새로운 시대의 범유럽안보체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콜수상 정부가 내세운 「정치적 통일,군사적 분할」이라는 타협안은 어차피 과도적 편법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주저없이 보수연합을 택한 동독총선거의 결과를 놓고,그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한반도의 분단이 소련군 탱크 위에 안주해온 동독공산당보다 더 가혹한 김일성 독재체제에 의해 강요되고 있는 한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 우리 자신 동독총선거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이끌어낼 만큼 준비태세가 돼있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공산정권은 틀림없이 이땅에서도 결국 무너질 것이다. 그 다음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번 동독총선거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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