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국방위에서의 군조직법 변칙처리광경을 보면서 무슨 코믹만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의사봉을 빼앗긴 채 맨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통과를 선언하는 사회자의 모습을 보고 코믹만화를 연상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의 감수성에 이상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장면은 지극히 희극적이었으면서 내용은 비극적이었다. 신사고와 안정된 정치를 다짐하고 새로 출범한 거대여당이 정치의 장에서 처음으로 보여준 작품치고는 너무 치졸하고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고 우리에게 단순한 실망 이상의 암담함까지 안겨다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호만큼도 상기시키고 싶지 않은 지난날의 정치작태 중에 가장 으뜸가는 것이 몇번의 날치기 법률통과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4사5입 개헌이 그랬고 3선개헌 때가 그랬다. 지금 민자당은 국민이 가장 잊고 싶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지난 권위주의 시대의 치부를 명색이 민주화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이 시점에서 다시 재연해 보이고 있으니 도대체 그 의도가 무엇이며 어떤 효과를 바라고 꾸며진 연극인지 헤아릴 길이 없어진다.
정치무대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있던 국민에게 고작 선보인다는 것이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면 민자당의 앞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치자체에 등을 돌릴 국민이 줄을 이을 것이 불을 보듯 확연하다.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여당의 처지로서는 그같은 변칙적 방법이 아니더라도 정당하게 법을 통과시킬 만한 힘을 충분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다수결원칙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이상 야당도 반대할 만큼 반대하고 의견개진을 할 만큼 하고나면 법에 따라 법안을 처리하는 데 크게 반발할 명분을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을 굳이 정당한 절차와 적법한 방법을 뛰어넘어 억지통과의 형식을 취하게 했던 거대여당의 속셈과 행태가 우리에겐 이상하다 못해 기이한 것으로 비칠 것이 당연하다.
새롭게 거대여당이 된 민자당으로서 이제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현실을 국민과 야권 앞에 과시해보고 싶었던 것일까,아니면 옛 권위주의시대의 강행수법에 향수를 느낀 나머지 다시 한번 이를 재연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일까. 이유야 무엇이 되었던간에 민자당은 변칙처리 방식을 통해 거대여당의 막중한 힘을 과시하기에 앞서 국민의 빈축부터 샀으며 옛 수법을 답습한 모습에서 정치상실의 의혹을 많은 사람들에게 부각시켜 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우리는 군조직법안 자체의 내용을 두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 법안이 꼭 통과되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을 지닌 것이었다면,거쳐야 할 찬반토론 모두 거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신중한 심의 끝에 정당한 절차를 밟아 통과시키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러한 절차를 생략해야 할 만큼 이 법안의 통과가 촌각을 다툴 화급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이나 그러하다.
이번의 변칙처리에 대해서는 민자당 당내에서조차 적지않은 비판이 있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변칙처리의 순간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구민주계 의원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민자당의 앞길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제발 정치인들은 이제 그만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이제 그만 암담함을 안겨다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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