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요직거쳐 88년 쿠데타로 집권/강권 정치 일관… 경제 악화 불러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아이티대통령 프로스퍼ㆍ아브릴중장(52)이 집권 1년6개월만에 국민들의 사임압력에 굴복,10일 권좌에서 물러났다.
88년 9월 쿠데타로 앙리ㆍ낭피중장을 대통령직에서 축출하고 집권한 아브릴중장은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이념이나 정책이 없이 단지 군부내의 세력다툼에서 승리한 독재자였다.
낭피 전대통령은 지난 86년 무려 29년간 족벌강권통치를 해온 뒤발리에 정권하에서 군참모총장직을 맡아오다가 88년 1월선거로 들어선 민간정부를 출범 5개월만에 무너뜨렸었다.
아브릴은 이당시 대통령경호사령관으로서 낭피의 집권을 도왔으나 군부내의 반발세력을 등에 업고 3개월만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87년 이후 중단됐던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민주주의실현을 위한 선거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개혁제스처를 썼다.
마약밀매로 골치를 앓고 있던 미국은 아이티군부에서 자행하고 있는 마약밀수를 근절하겠다는 조건하에 연7천만달러의 원조를 재개했다.
아브릴은 이같은 약속에 따라 군고위장성을 예편시키고 군부를 개편하려 했으나 군부내의 강한 반발과 2차례의 쿠데타기도로 실각할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뒤발리에 대통령 당시 대위였던 그는 한때 정권내의 알력으로 예편당할 뻔했으나 85년 개인경호실장으로 복귀했고,88년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파면당했으나 낭피전대통령의 보좌역으로 복귀하는등 군부내의 실력자로서 항상 권력을 잡을 위치에 있어왔다.
61년 아이티군사관학교를 수석졸업한 그는 미해병대에서 교육을 받는 등 전형적인 「무골」이기도 하다.
이번에 그가 사임하게 된 배경은 지난 5일 시위진압군 11살의 소녀를 피살함으로써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격화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인당 GNP가 3백50달러도 안되는 경제상황과 군사독재정권의 장기지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전투구양상을 보여온 아이티의 정국이 중남미 군사문화정치의 한 단면이라고 볼 때 과연 「민이 주도하는 정치」가 정착될지 주목된다.【이재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