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체제 모양갖추기 “시동”/세습동요ㆍ개방 무마 다각적 포석/오진우등 혁명 1세대 퇴진 관심북한이 제9기 최고인민회의선거를 6개월이나 당겨 오는 4월22일 실시키로 결정한 가운데 김일성이 김정일에 주석직을 승계한다는 사실을 중국측에 통보했다는 외신보도가 나오는등 북한의 변화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북한의 변화가 동구식의 개혁을 의미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출발선은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권력기반의 강화와 조직의 재정비일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문제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이번 최고인민회의선거 조기실시가 김정일의 지지기반을 강화하려는 사전포석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다. 또한 이는 동구개혁등 국제정세변화에 어떤 형태로든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선거 조기실시가 구체적으로 북한의 권력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는 전망이 엇갈린다. 우선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선거조기실시를 주석직 승계로 보는 시각이다.
북한은 지난 72년 이전까지만 해도 김일성이 맡고 있던 내각수상직과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후 북한은 지난 72년 기존의 「인민민주주의 헌법」을 폐기하고 「사회주의헌법」을 채택,국가기관체계를 현재의 주석 중심으로 일원화했다.
북한에서 주석은 국가의 수반으로 국가주권을 대표하는 외에 중앙인민위원회의 「수위」,국방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어 사실상 국가기관을 지휘하는 절대권력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노동당 총비서이기도 한 김일성은 72년 주석직을 신설함으로써 1인 지배체제를 완료했다.
주석은 임기가 4년으로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되는데 이번 조기선거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선거에서 김정일 지지세력들이 대거 대의원으로 선출될 경우 무리없는 주석직 승계의 형식적 조건은 일단 마련되는 셈이다.
김일성이 이번 9기 최고인민회의선거를 끝낸 뒤 주석직을 내줄 경우 자신은 당분간 노동당 총비서로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김정일에게 권력이 완전히 승계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동요나 권력공백현상을 수렴첨정으로 보완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그러나 동구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김일성이 주석직을 승계시키기에는 모험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주석직을 승계시키지는 않고 전반적으로 김정일의 지지기반을 굳히는 선에서 그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이 경우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상당수를 김정일 지지세력으로 교체할 것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물갈이에서 주목되는 점은 군실권자인 오진우를 필두로 하는 「혁명 1세대」의 퇴진여부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상당수의 혁명 1세대가 퇴진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오진우를 비롯한 핵심세력의 탈락여부는 미지수로 보고 있다. 이들 핵심세력들이 김정일 주변세력이나 테크너크랫으로 대폭 교체될 경우 북한의 권력구조는 급격히 개편될 것이다.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조기선거를 계기로 헌법등 일부 제도를 개편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즉 북한은 김일성ㆍ김정일부자의 확고한 권력기반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대내외적으로 개혁의 제스처를 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고인민회의는 주석선출 외에도 헌법ㆍ법령의 채택 수정,대내외정책의 기본원칙수립 등의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석도 설득력을 갖는다.
북한이 이처럼 변화의 움직임을 빨리 보이고 있는 것은 동구의 개혁바람에 어떤 방향으로든 대응해야 할 체제유지 차원의 급박한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루마니아등 맹방의 격변을 지켜본 북한으로선 외부의 개혁바람과 내부의 동요에 제때 대처하지 않을 경우 위기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느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소련등 다른 사회주의권으로부터 직ㆍ간접적으로 밀어닥칠 개방ㆍ개혁압력에 앞서 변화의 모양을 갖춤으로써 선제대응한다는 계산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이 이러한 변화움직임이 급격한 개혁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올해 김일성 신년사와 지난 1월5일부터 열린 노동당 제6기 17차 중앙위 전원회의결과 등에 근본적인 내부개혁의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만큼 2∼3개월 사이에 갑작스런 변화가 이뤄졌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계기로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권력기반강화에 주력하는 동시에 외형적으로는 개방ㆍ개혁의 모양을 갖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은 권력승계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이며,개혁을 이유로 김정일로의 권력집중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도 보인다.
이와 관련,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은 노동당내 민주주의나 최고인민회의 등 정권기관의 강화 등을 명문화한 형식적인 개혁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나 실질적인 다당제등 권력구조 변화나 시장경제 도입 등의 근본적 개혁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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