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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전에(장명수칼럼: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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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전에(장명수칼럼:1347)

입력
199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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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성ㆍ필화남매가 삿포로에서 40년만에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민족의 기구함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하게 된다. 특히 오늘 느끼는 아픔은 그 어느때보다도 아프다. 지난 연말부터 동서독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그 놀라운 진전,40년분단을 단숨에 뛰어넘어 무조건 통일하고자하는 뜨거운 민족애…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을 부러워하기만 해야할까.우리는 이제 소련에도 가고,중국에도 가고,동구 여러나라들과 국교를 맺고 있는데,언제까지 북한과는 철조망과 지뢰밭을 사이에두고 살아야 할까. 우리가 가장먼저 달려가야할 곳,1천만이산가족들이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곳,북한과 자유롭게 오갈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16살때 6ㆍ25가 터지자 『너는 장남이니 사흘만 피난갔다 오라』는 아버지의 말대로 주먹밥을 싸들고 친구들과 길을 떠났다가 이산가족이된 한필성씨,이제 56살인 그는 북에서 온 누이동생을 부둥켜안고 울면서 『그래도 나는 동생을 만났으니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들 남매가 19년전 삿포로에서 만나려다 끝내 못만난채 전화로 울부짖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그의 말을 너무나 잘 이해할수 있다.

한필성씨와 그의 아내 홍애자씨가 북의 가족들을 위해 준비해간 선물목록은 더욱 눈물겹다. 홍씨가 며느리로서 시어머니ㆍ시누이ㆍ올케들을 위해 예물로 마련한 금반지 6개,화장품,내의,노인의 건강에 좋다는 자석물베개,어머니를 위한 수의,그리고 16살때 홀홀단신 남하한이래 40년의 인생역정을 육성으로 담은 녹음테이프… 우리는 그 테이프에 담긴 얘기를 지금 듣고 있는 듯하다.

동생 필화씨가 오빠를 위해 들고온 선물은 호랑이를 그린 석분화이다. 『조선풍속에 집에 범그림이 있으면 흥하다는 말이있어 이 그림을 가져왔다』는 그의 설명,『어머니가 오빠에게 큰절을 하고,숙소를 함께 잡아 숙식을 같이 하다가 오라고 했다』는 말은 남쪽의 가족을 향한 북의 그리움을 전해준다.

한필성씨는 아버지가 장남인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80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85세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에 북한을 방문할수 있도록 정식으로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어찌 한필성씨 뿐이겠는가. 서로 애타게 그리워하는 혈육들이 세상을 떠나기전에 만날수 있도록 우리는 남북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북의 개방을 촉구해야 한다. 더늦기전에 서로 문을 열지 않으면 1천만 이산가족들은 살아서 서로를 볼수 없었다는 또 하나의 기막힌 한을 안게 될것이다.

한필성씨와 함께 주먹밥을 싸들고 남하했던 친구들인 조윤식ㆍ오명식씨는 필화씨에게 꽃다발을 만들어 보냈다. 그 꽃다발에 담긴 눈물이 더늦기전에 북을 움직일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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