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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출신 태권도 9단/이승완씨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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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출신 태권도 9단/이승완씨 그는 누구인가

입력
1990.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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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위해 정치보호막 필요”신조/양주판매로 자금… “부하 3천명”이승완씨는 「조직폭력배의 대부」,「극우단체의 지도자」,「용팔이패의 왕초」 등으로 알려져있으나 원래는 국가대표 태권도선수까지 역임한 무도인출신.

이씨는 전북 전주출신으로 전주북중2년때부터 태권도를 시작,뛰어난 기량과 승부근성으로 한때 전국대회를 휩쓸었으며 9단까지 올랐다.

전북 이리원광대 법학과2년을 중퇴하고 군복무후 해병대 태권도팀 창설코치를 맡아 해병대팀이 대통령배쟁탈 태권도 대회에서 5연패를 하게해 성가를 높였고 이를 발판으로 중고 태권도연맹회장,전국 고단자회회장,전국지도관 총관장직을 맡았다.

이처럼 체육계에서 활동하던 이씨가 중앙무대로 진출한것은 중앙정계의 L모씨 등을 알게된후 서울 명동일원의 주류유통업에 손을댄 70년대 중반서부터 인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이씨는 뛰어난 무술력과 폭넓은 인간관계 및 타고난 보스기질 등을 발휘,전남출신이 대세를 장악하고있던 호남파주먹세계를 잠식해 들어갔다.

이씨는 특히 ▲절대 흉기를 사용치 않는다 ▲파렴치한 행동을 금한다 ▲경제적독립을 이룩한다는 등 기존주먹계와 다른 모토를 내걸고 전북주먹을 완전장악했으며 이를 계기로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씨는 『주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의 보호를 받아야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같은 사실때문에 여타 광주파패밀리 등은 이씨 조직을 경원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씨는 지난79년부터 10년동안 서울 방배동에 덕윤산업이라는 광고기획실을 차려놓고 자신의 조직과 이미지를 관리하는 한편 충정로2가에 베리나인 등 양주 공급대행업체를 차려 자금을 조달했다.

이씨의 후배조직원들은 현재 서울 강남일원의 주류유통업계를 거의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정치에 뜻이있었던 이씨는 용팔이 사건의 배후로 자신이 드러나기 직전인 지난 88년 7월7일 호국청년연합회를 창립,초대총재에 취임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씨는 용팔이 사건과 관련된것으로 알려지고 호청련의 폭력배정화사업이 여론의 질타를 받는 등 구설수에 오르자 지난해8월 총재직을 사임했다.

이씨는 지난달21일 호청련을 자진해체한후 호청련 비상대책연합위원장직을 맡아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었다.

이씨는 수배중에도 호학련발족식장에 버젓이 나타났는가하면 지난달 28일에도 리베라호텔에 보디가드 20명을 거느리고 드나드는 등 공권력을 전혀 의식치않는듯한 대담한 활동을 계속해 화제를 모았다.

이씨가 거느리고있는 조직원은 현재 호청련핵심요원 2천여명 등 전국에걸쳐 3천여명에 이를것이라는게 경찰의 추정이다.

이씨는 한때 강원고성에 백호광업이라는 활석광산을 경영하기도 했으나 최근 수지가 맞지않아 폐광했다.

앞으로 검찰수사가 어떻게 진전될지 모르지만 이씨의 검거로 용팔이사건뿐 아니라 조직폭력의 실상이 어느정도 벗겨질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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