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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나누기(장명수칼럼: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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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나누기(장명수칼럼:1342)

입력
1990.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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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땅처럼 한국인의 생활과 정서에 밀착돼있는 대상은 없다. 오랜 농경민족으로 땅을 일궈 곡식을 수확하며 풍요와 굶주림속에 살아온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쌀과 땅에 대한 무한한 애착,한과 외경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그러므로 우리가 쌀을 나누어 먹고,쌀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자선냄비에 넣는 것보다 휠씬 진한 행위다. 흉년과 보릿고개의 굶주림속에 곡식은 곧 생명이었고,날마다 쌀한숟가락씩을 덜어모아 독립운동을 도울때 그 쌀은 애끓는 희망이었다.

쌀의 자급자족을 이룬것이 불과 몇년전인 우리가 쌀나누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먹을 식량을 아끼는 절미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나라와 이웃이 어려움에 빠질때마다 쌀을 모아 서로 돕는 전통을 키워왔다. 그것은 어려움중에도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귀한 정신이었다.

그러나 쌀생산량이 자급자족을 넘어 재고를 우려할만큼 풍작을 이루면서 우리는 쌀나누기의 정신을 잊고,이 세상에 굶주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자체를 잊게됐다.

올해 쌀재고량은 1천만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이를 보관유지하는 비용만도 3천억원이나 필요한 실정이다. 농민들은 이제 풍년을 기뻐하지 않고,정부는 남아도는 쌀을 수매하기에 벅찬 부담을 안고있다.

쌀은 어느덧 우리에게 한과 외경의 대상이 아니고 단지 「남아 도는것」이 돼버릴 처지에 놓여있다. 우리는 쌀에 대한 감사를 잊고,쌀은 누구에게나 남아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것은 쌀과 땅에 밀착해있던 한국인의 정서가 크게 흔들려 혼돈에 봉착하고 있는 신호이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한국일보와 함께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3ㆍ1절 71주년인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벌써 전국 방방곡곡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인의 정신 깊은곳에,피와 살속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쌀나누기의 전통이 아름다운 이 봄에 활짝 꽃피고 있다.

쌀한톨에도 농부의 정성이 깃들여 있음을 밥상에서 가르치며 밥한알까지 깨끗이 먹도록 타이르시던 우리의 옛어른들,항아리한개를 따로두고 밥지을 쌀을 퍼낼때마다 한숟가락씩 덜어 따로 모으던 어머니의 정성을 떠올리며 쌀보내기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굶주리는 이웃에,북한동포에,해외빈민을 위해 쌀을 나눔으로써 「쌀풍년 사랑흉년」의 흉흉함에서 벗어나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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